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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말끝을 흐리는 버릇

by 만선생~ 2023. 10. 23.

<<목호의 난 1374 제주>> 에 사인 중인 나

내겐 말끝을 흐리는 버릇이 있었다.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몰라 확답을 피했던 것 같다.
당연 우유부단한 사람으로 찍혀 넌 늘 그렇지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근래 어느 자리에서 아닌 걸 아니라고 재차 말한 적 있다.
듣고 있던 후배님께서 시간이 지난 뒤 조용히 나의 태도를 칭찬해주었다.
하나의 일은 어느 자리에 참가할 수 없다고 나의 입장을 밝힌 점이었다.
가고싶지만 선약 때문에 갈 수없는 자리였다.
그런데 이게 뭔가?
옆에 있는 이로부터 나의 분명한 태도가 좋다는 칭찬을 들었다.
마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말은 종종 그 사람을 정의한다.
2009년 한겨레신문에 한컷짜리 에세이 그림을
시작할 때 담당기자가 짤막한 소개글을 써주었다.
정용연은 사라져가는 것에 관심이 많은 젊은 만화가라고.
그 말 때문인지 내 스스로 사라져가는 것들을 더 많은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꾸불꾸불한 하천, 비포장도로, 오래된 집,
마을 앞 당산나무...
사람의 기본 성향이야 변하지 않겠지만 기자의 글로 인해 나란 사람을
분명히 알게 되었고 작품방향도 현대적인 분위기보다는 옛스런 쪽으로
흐르게 되었다.
아닌 것은 아니라 말하는 나.
분명한 의사표현으로 상대가 진의를 몰라 쓸데없이 에너지를 쏟게 하지 않는 나.
물론 세상은 명확히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일들이 수없이 많다.
입장을 끝까지 밝히지 않은 채 예의주시해야될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한미 에프티에이나 사드배치 등이 그렇다.
상황에 따라선 했던 말도 뒤집어야 한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원칙을 잃지 않으면서 유연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다.
사실 나는 지금도 말끝을 흐리곤 한다.
늘 여지를 남겨두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칭찬을 들었으니 그런 사람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정말 그런 사람으로 변한 것인가?
오늘도 날은 밝고 진작 끝냈어야 하는 원고가 수북히 쌓여있다.
 
(2017년 페북에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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