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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모순

by 만선생~ 2024. 3. 21.

2017년 이맘 때 썼던 글

모순

이상하다.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힘들게 살아온 이보다 부유하게 살다 힘들게 사는 이를 더 동정한다.
천하게 태어나 허리한 번 펴지 못하고 일만하는 종놈보다 몰락한 양반댁 도련님의 처지를 더
안타까워 한다.
폐지를 줍는 할머니보다 어린 시절부터 공주로 떠받들리고 마침내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여자를 더 동정한다.
불행의 총합에서 박근혜와 폐지 줍는 할머니는 비교가 되지 않는데 말이다.

아직도 박정희 향수에 젖어 있는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를 보며 눈물을 흘린다.
평생동안 원없이 누리고 살아온 그녀를 보고 말이다.
탄핵을 당해 대통령직에서 쫓겨나고 검찰에 나가 수사 받는 걸 자신의 일보다 안타까워한다.

동네 수퍼에서 만원어치 물건을 훔친 영자네 엄마는 용서할 수 없는 죄인이다.
무조건 감옥에 처 넣어야 한다.
사회와 분리시켜 선량한 사람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수백억원의 뇌물을 받은 사람은 다르다.
개성공단 패쇄같은 말도 안되는 정책을 밀어붙여 수많은 사람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뜨린 박근혜는
온몸을 바쳐 보호해줘야 하는 존재다.

참으로 모순된 감정이 아닐 수 없다.
나 역시 흔들렸다.
검찰청 포토라인에 선 박근혜를 보며 잠시나마 안됐다는 마음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냉정해져야 한다.
아무리 수의를 입고 수갑을 차도 박근혜가 폐지를 줍는 할머니보다 불행하지 않다.
나라의 불행이라면 모를까.
다시는 이 땅에서 대중의 모순된 감정을 발판삼아 권력을 행사하는 이가 탄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충분히 경험했다.
공주는 박근혜 하나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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