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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이놈 정신 머리하고는

by 만선생~ 2024. 2. 19.

 
 
 
며칠 전 이희재 선생님 내외 분을 만나 나의 정신머리 없음에 대해 말했다.
가장 먼저 말한 것은 여권 분실이다.
2003년 중국 광쪼우에 있는 작은 형 회사에 갔을 때 여권을 잃어버린 것이다.
아마도 버스로 이동 중 뒷주머니에서 빠진 듯하다.
할 수없이 광조우 한국영사관에 가 임시 여권을 발급받았다.
이 때 임시 여권 발급받기 의해 사진관에 가 사진을 찍었다.
쓰지 않아도 될 돈을 쓴 것이다.
홍콩을 경유해 돌아올 때 공항 직원이 임시 여권을 보더니 의심스런
눈초리로 뭐라뭐라 하였다.
영어를 알아들을 수 없는 나는 "아엠 미스테이크"란 말만 반복했다.
무사히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왔으나 나의 주의력 없음을 자책했다.
다신 이러지 말아야지... 암..암...
 
지갑도 자주 잃어버렸다.
택시에 두고 내리고 주머니에서 빠지고...
지갑을 잃어버릴 때마다 속이 쓰렸다.
지갑이 돌아온 예는 단 한번도 없었다.
돈도 돈이지만 신분증이 악용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때마다 어머니 말씀이 생각났다.
 
"정신 차리고 살어."
 
신용카드 분실 신고한 예는 수도없이 많아 생략하겠다.
집에서 회룡역까지는 걸어서 25분쯤 걸린다.
시간을 단축하기위해 한동안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어느날 시내에 나갔다 회룡역에 도착하니 자전거 열쇠가 없는 것이다.
나름 값이 나가는 자전거라 자전거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바퀴에 열쇠가 채워져있어 끌고 올 수 없었다.
집에 돌아오니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그런데 주머니를 뒤지자 열쇠가 나왔다.
주머니 사이에 끼어 발견을 못했던 것이다.
완전 바보인증이었다.
 
자동차 키가 두 개였는데 하나를 잃어버려 불안했다.
마침 재난지원금으로 20만원을 받아 자동차키를 장만하기로 했다.
값을 물어보니 16만원을 달란다.
전자키인데다 본사인 프랑스에 가 인증을 해와야 하므로 시간도 보름 정도 걸렸다.
그렇게 자동차키를 받았는데 이틀만에 잃어버리고 말았다.
왔던 길을 따라갔지만 자동차 키는 보이지 않았다.
키가 하나 더 있다 생각하니 자연스레 긴장의 끈을 놓아버렸다.
다행히 지금까지 하나밖에 없는 자동차키는 잃어버리지 않았다.
이렇게 정신이 없는 와중에 만화 원고만큼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잘 보관하고 있다.
 
얼마나 가치를 지니고 있는 지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내겐 삶의 소중한 기록이다.
재작년엔 이 원고를 어떻게 보관할까 고심하다 반닫이에 한데 모아 넣어 두었다.
나다운 원고 보관법이란 생각이 든다.
선배나 동료 만화가들이 원고를 제대로 보관하지 않아 사라진 것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 없다.
한국 만화사에 큰 손실이다.
심지어 단행본들도 모두 사라져 구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작업을 귀하게 생각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생각하면 소소하게 돈을 잃어버린 경우는 있어도 삶의 기반이 되는 돈을
잃어버린 적은 없다.
 
도박과 주식 투자 무리한 사업 등으로 전재산을 잃은 사람을 보면 나의
정신머리 없음은 애교 수준이다.
그렇게 나자신을 변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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