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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큰형수

by 만선생~ 2024. 2. 15.

큰형수
 
 
설날 식구들이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다.
여느 명절 때와 마찬가지로 올 해도 아버지가 화제에 올랐다.
어머니와 형들 입을 통해 아버지 때문에 고생한 이야기가 한도 끝도 없이 이어졌다.
번에도 고구마 백개를 삼킨듯한 답답함이 명치끝에 올라 가슴을 쳐야했다.
어쩌자고 그랬을까?
울 아버지는...
작년 추석에 무너졌던 억장이 또다시 무너졌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울지 않았다.
눈물이 안나왔다.
형들과 누나 동생도 안울었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식구들 중 유일하게 울어준 사람이 큰형수님이예요."
 
그랬다.
아버지가 무덤에 묻힌뒤 큰형수는 무엇이 그리 슬픈지 한참동안 눈물을 흘렸다.
어린 나이 결혼해 나보다 한 살 어린 형수였다.
형수는 무던했다.
아버지 살아계실 때 아버지가 그렇게 주사를 부려도
싫은 기색을 비치지 않았다.
어머니와 우리 형제들은 미쳐 죽을 것 같은데 말이다.
아버지가 위암으로 돌아가실 때도 큰형수는 내내 병실을 지켰다.
어머니 종종 내게 이런 말씀을 하신다.
 
" 큰형수한테 잘해야한다.
너희 큰형수같은 이가 없다."
 
작은 형수는 큰형수보다 한 살 많다.
나이 어린 큰형수가 손위 동서다.
그럼에도 작은 형수는 성품이 선하여 큰형수를 잘 따랐다.
생일이 돌아오면 서로들 선물을 꼭 챙긴다.
어쩌다 해외여행을 다녀와도 동서에게 줄 선물을 잊지 않는다.
이런 저런 얘기 끝에 작은 형수에게 물었다.
 
"지금까지 큰형수님한테 마음 상한 적 없어요?"
 
없었다고 한다.
 
나는 우리 형수님들을 모티브로 2020년 12월 단행본 "친정가는 길 " 1권을 냈다.
황해도 평산에 살던 두 동서가 홍경래의 난에 휩쓸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황해도와 평안도가 작품의 무대다.
사정으로 인해 작업이 중단됐지만 내 후년 쯤
반년 정도 시간을 내어 완결지을 생각이다.
두 여성의 우정과 연대가 작품의 주제다.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던 유일한 이.
헌데 큰형수말고도 조카가 울었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아버지 죽음이 임박해 큰형과 나는 아버지 묘자리를 보러 떠났다.
그 사이 아버지는 숨이 넘어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식구들은 아버지를 병실에서 돌아가시게 할 수없다며 집안으로 모셨다.
이윽고 눈울 감은 아버지.
연락을 받고 학교에서 돌아온 중학교 1학년생인 조카아이는 돌아가신
할아버지 앞에서 아주 서럽게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증명사진을 할아버지 주머니 속에
넣었다고 한다.
 
조카는 죽을 아이였다.
조카가 태어났을 때 심장 이상으로 얼마살지 못할 것이라했다.
이때 큰형 부부만큼이나 마음을 졸였던 건 할아버지인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보호자 자격으로 수술에 들어가 심장이 절개된 손주의 모습을 보았다.
생사를 오가는 수술 끝에 조카는 살아남았다.
몸이 작고 약했으나 중고등 시절 날마다 농구를 4시간 이상 하여 키가
180까지 자랐다.
성인이 돼서는 헬스를 열심히 해 몸짱이 됐다.
지금은 대학원을 졸업해 취업 준비 중이다.
조카에게 갓난아기 시절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자라면서 손주에 대한 할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느꼈을테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신의 증명사진을 할아버지 주머니 속에 넣는 손자.
 
아버지는 2012년 세권으로 출간된 "정가네소사"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출연 비중이 가장 높다.
그리고 정가네소사 작가의말엔 강희영 구명화 두분 형수님께
감사드린다는 말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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