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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방언

by 만선생~ 2024. 3. 24.

방언
 
 
화성에서 일년 남짓을 살았는데 스트레스였다.
어딜 가면 꼭 화성연쇄살인을 이야기했다.
하다못해 중들조차 첫마디로 하는 말이 연쇄살인사건이었다.
화성을 떠나고 싶었다.
마침 작은형수가 빌라에 세들어 사는 대신 아파트에 사는 건 어떠냐고 물었다.
감히 꿈꿀 수 없었던 아파트였지만 맘을 먹으니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대출을 최대한 많이 받아 오산 변두리에 있는 아파트를 샀다.
18평짜리 오래된 아파트였다.
어딜 가더라도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입에 올리는 이가 없었다.
서울 아래 도시가 안양 수원이고 수원 아래 도시가 화성 오산이다.
서울과의 거리는 50킬로미터.
차만 막히지 않으면 한시간 이내에 닿을 수 있다.
컴퓨터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컴터 가게에서 사람을 불렀다.
1인가게로 사장은 고향이 오산 덕절리라고 했다.
컴터를 고치는동안 항상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사장님 말투가 서울과 달랐다.
어딘지 모르게 충청도에 가까웠다.
 
평택은 오산에서 차로 30~40분 거리.
조선시대엔 충청도였다 행정구역이 개편되며 경기도가 되었다.
가끔 평택에 가 어르신들 얘기를 들으면 말투가 충청도 쪽에
가깝다는 걸 느꼈다.
말씨에 민감한 사람들은 금세 내가 어느지역 출신인지 알아차린다.
열두살에 서울로 올라왔지만 기본 억양은 변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김제사람으로 장성사람인 아버지를 만나 결혼했다.
갓난아기일 때 잠시 장성에 살기도 했지만 열두살까진 김제에서 살았다.
돌이켜보면 사투리를 참 많이썼다.
말을 시작할 땐 언제나 긍게를 말머리에 붙였고 형을 성, 부추를 솔, 공책을
작기장, 학교를 핵교라 했다.
한번은 서울서 사촌형이 내려왔는데 내가 아무렇지도 않다를 "암시랑
아니여"라고 말해 배를 잡고 웃었다.
아버지 고향은 장성이다.
무슨 사연인지 할아버지는 장성을 떠나 백암산 너머에 있는 순창
복흥에 사셨다.
 
어머니 손을 잡고 순창에 가던 일이 생각난다.
와룡역(김제역 위에 있는 간이역)에서 네 정거장 아래인 정읍역에 내려
버스로 갈아탈 때 느꼈다.
사람들 말씨가 김제와 다르다는 것을.
순창은 정읍과 더 달랐다.
서울로 올라와선 가끔 장성에서 친지들이 올라오면 말씨가 더 진하다 걸 느낄 수 있었다.
성인이 된 뒤 전라도 말씨를 들으면 금세 남도사람인지 북도 사람인지 판별을 했다.
북도는 위로 올라갈수록 말이 느리고 남도는 아래로 내려갈 수록 찰지다.
 
하지만 경상도는 다르다.
대구말과 부산말을 얼추 구분할 뿐이다.
지역을 분간하기 힘들다.
충청도와 강원도도 마찬가지다.
이북말은 평안도와 함경도를 겨우 구분할 뿐 황해도 말은 짐작조차 못한다.
제주도 말은 남북이 아닌 동과 서로 갈린다고 한다.
토양과 기후의 차이로 심는 작물이 다르니 말도 달라진다.
몇해 전 순천에 갔다 어린학생들이 하나같이 서울말을 쓰는 걸 보고 놀랐다.
부산이라면 굳이 애써 서울말을 배우려 애쓰지 않을텐데 상대적으로 소외된 지역이라
자신의 억양을 버리나 싶어 슬펐다.

 

아래는 댓글들 


길*수
처가가 있는 해남에 갔다가, '완마!' 배워왔습니다.ㅎ


강*인
저도 사투리에 사연이 좀 있습니다.
중학교 졸업하고 부산에 잠시 있다가 서울로 다시 성남으로 가게 됩니다.
성남 오리엔트시계공장에서 일을 하며 밤에는 검정고시 학원을 다니게 됩니다.
중학교 졸업하면서 형편이 어려워 내 비록 고등학교 진학은 못하지만
동기들보다 졸업장 만큼은 먼저 따겠노라고 다짐을 했기에 주경야독이
굉장히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사투리가 워낙에 심하다 보니 학원 선생님께 질문을 해도 잘 알아듣지
못해 누군가의 통역?이 필요했습니다.
그때 통역을 담당했던 아우가 한명 있었는데, 바로 이재명 경기도 도지사입니다.
이 분은 중학교도 검정고시여서 저보다 성남에 먼저 와 있었고
안동출신이라 제 말을 통역할 수 있었지요.
80년 4월 고등학교 졸업자격을 주는 대입검정고시 시험을 같이 보고 같이 합격합니다.
참으로 머리도 좋고 똑부러지는 성격으로 저는 기억하지만 이분은 저를
기억하지 못해 잠시 아시워했던 적이 있습니다. ㅎㅎ
그후 80년 전두환이가 광주시민들을 무참히 죽이는 사건이 일어나자 저는
그때부터 고향이 어디인지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아무도 가르쳐 주거나 그가 나에게 해꼬지 한 것은 없지만 그와 동향이라는
것이 너무도 부끄러워 그리 살아더랬습니다.

정용연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그야말로 눈물겨운 성공스토리입니다.
이재명 지사와의 인연도 특별하고요. 만화로 그려도 재밌을 스토리...
그나저나 대머리 때문에 고향을 말하지 못하다니... ㅠㅠ

강*백
님의 글발이 참 찰집니다. 눈에 착 달라붙습니다.😱

정용연
고맙습니다 ^^

*세무사
충청도에 4년 넘게 살다 보니 말투가 좀 섞이네요ㅋㅋ

정용연
못느꼈는데 그랬었나요? ㅋㅋㅋ

*병재
경상도도 거의 표준어 사용해요,..
아주 작게 남은 억양만 남았죠...
지금은 겨우 경남북 억양만 약간 다른데...
대구에 있으면 각지에서 온 애들의 고향을 대충 맞췄죠.. 당시에는...
안동사람, 상주사람, 의성사람, 포항사람, 경주사람, 영덕사람,,,,

정용연
경상도 말 참 좋아해요. 특히 여자가 경상도 말 엄청 귀엽죠. 제가 좋아하는 노무현 대통령 음성은 꿈결처럼 달콤하고... ^^

*병재
우리 엄마는 거의 경상도 고향말
나는 억약만 경상도 90% 표준어
우리 애는 억약만 약하게 남고 99% 표준어....… 더 보기

정용연
민병재 한국어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너무 슬프네요.

*병재
자기국어를 등한시하고 영어 잘 사용하는 나라
필리핀어, 말레이시아어, 스리랑카어, 힌디어...등등,,,
이밈 사라져 가고 있죠???… 더 보기

*명기
그러게요.
쬐끄만 땅덩인데 왜케 말이나 억양이 다른지~
제주 방언은 못알아 들어요

정용연
제주 방언은 저도 못알아듣습니다. 그런데 이제 방언쓰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일본도 오키나와나랑 홋카이도는 그 쪽 말이 다 사라지고 이제 도쿄말을 쓴다고 해요.

Windy Song
작기장, 핵교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가위를 가세라고도 한듯요. 기어이를 기연시, 고기를 괴기,,,

정용연
기억하시네요. 김치는 짐치라고 했었죠. 겨우는 포도시

Windy Song
ㅎㅎ 짐치

*중찬
전라도 사투리가 가장 심한 곳은 광주광역시 아닐까합니다.
저는 부산과 대구 사투리 구분되던데?

정용연
*중찬 전라도의 중심도시라 사투리가 가장 센걸까요? 경상도사람이 아니라 구분이 쉽지 않네요.

*중찬
정용연 전라도 사람들은 오랜시절 핍박 받아온 탓에 방송을 듣다보면 되도록 사투리를
덜 쓰려고 노력하는 경향이 느껴집니다.
반면 다수의 경상도 사내들은 방송에서 너무 자신만만하고 거칠게 사투리를
남발하는 것이 저를 슬프게 하더군요.

정용연
안중찬 현실적으로 경상도 사람들이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다 잡고 있어서
유튜브 강연도 경상도 말은 많이 들리는 반면 전라도 말은 거의 안들리는...
전라도 사람으로서 슬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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