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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머리숱

by 만선생~ 2024. 3. 26.
 
갈수록 머리숱이 줄어들고 있다.
줄어들고 있을 뿐 아니라 가늘어지고 있다.
몸이 피곤하면 머리부터 가라앉는다.
머리가 빠져 고민이라던 후배의 말이 이젠 달리 들리지 않는다.
할수만 있다면 정수리에 머리를 천개 쯤 심고 싶다.
모근이 튼튼한 동료 작가의 머리를 볼 때마다 부러움이 일곤한다.
그렇게 튼튼한 모근을 가졌음에도 귀찮다는 이유로 머리를 밀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알지 못할 열패감을 느꼈다.
한마디로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고향인 봉하로 내려갔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머리였다.
밀짚모자를 벗었을 때 드러나는 빽빽한 머리숱이 지금도 선연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반대로 그의 오랜친구였던 문재인 대통령을 보면 애잔한 마음이 든다.
머리를 숙일 때 드러나는 듬성듬성한 머리가 마치 십오륙년 뒤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다.
문득 젊은날의 모발상태가 궁금해 앨범을 뒤졌다.
스무살에 친구랑 서해안에 놀러가 찍은 사진이다.
턱선도 날렵했지만 머리숱이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세월은 그렇게 흘렀다.
턱선은 한없이 둥글어졌고 몸은 둔해 일어서고 앉는 것도 경우에 따라선
결심이 필요하다.
이젠 두발딛고 박차 다리를 뻗지 못한다.
무엇보다 서러운 건 노안이다.
작은 글씨를 읽을 수가 없다.
다행인 것은 아직도 사람들 이름을 잘 기억한다는 것이다.
머리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특별히 나쁘지도 않은 것 같다.
노화는 피할 수 없지만 정신만큼은 건강했으면 좋겠다.
꼰대가 되는 걸 너무 겁내하지 않고 나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야겠다.

2018.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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