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멸보궁(寂滅寶宮)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을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 한다.
시집 "한라산"으로 유명한 이산하 시인이 산사 순례집을 썼는데 제목이
"적멸보궁 가는 길"이다.
나는 "적멸보궁"이란 제목에 매료돼 책을 사려했으나 절판되어 구할 수 없었다.
백양사는 어린시절부터 왔던 절로 우리집과 인연이 깊다.
어린시절 사천왕상을 지나며 무서워했던 기억과 부모님과 찍은 사진이 남아있다.
어른이 된 뒤에도 이삼년에 한번씩은 오는 듯 하다.
오늘 이른 아침 백양사 호텔.
숙박 중인 식구들이 잠든사이 홀로 백양사를 찾았다.
재작년엔 인조 때 지은 극락보전에 들어가 곳곳을 살폈는데 이번엔 1917년 지은
대웅전에 들어가 보았다.
대웅전은 절의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이다.
가운데엔 아미타 부처님이 양 옆으론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자리한다.
부처님을 모신 닫집은 화려하기 그지 없다.
부처님께선 자신을 이토록 화려하게 꾸미길 원치 않으시겠으나 신앙인들은
입장이 다르다.
최대한 크고 화려하게 지어야한다.
그렇게 해야 자신이 할 바를 다했다고 생각한다.
이는 서양 기독교도 마찬가지여서 종교 건축에 들이는 정성은 바벨탑을
쌓는 것 이상이다.
인간은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못생긴 여자보다 예쁜 여자를 못생긴 남자보다
잘생긴 남자에 눈길에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신앙의 대상을 위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바친다.
특히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다면 예술가들을 총 동원하여 자신의 신앙심을
증명하려 한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종교 예술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종교는 아편이며 노트르담 성당,
앙코르와트, 아야소피아, 부석사 같은 종교 건축은 인민의 피와 땀으로 이루진 것이다.
부수어 없애는 것이 마땅하다.
그래서 인류 유산이라 일컫는 모든 건축을 파괴하여 없앤다면 어떨까?
상상하기도 싫다.
끔찍한 반달리즘이다.
바미안 동굴을 파괴한 탈레반과 다를 바 없다.
인류가 만들어낸 최고의 예술품을 감상할 기회가 사라지는 것이다.
우린 그 같은 만행을 저지를 권리가 없다.
인류의 지혜가 집결된 종교 건축을 잘 보존하여 후대에 물려주는 것!
우리의 사명이라 생각한다.
잡설이 길어졌다.
아미타 부처님과 문수보살 그리고 보현 보살을 모신 감실 윗쪽엔 내원궁內院宮이란
현판 글씨가 있고 놀랍게도 그 아래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 써 있는 현판 글씨가 있다.
그렇다면 이 곳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단 말인가?
2500년 전 열반에 드신 사리가 인도도 아닌 한국에 그 것도 곳곳에 남아
있을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절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 진신사리가 있는 양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어쨌든 적멸보궁 앞에서 엎드려 절하진 못하고 허리를 숙여 예를 갖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