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늘 말씀하셨더랬어요.
너그 할머니는 하서 대감 직계손이시라고.
궁금했지만 찾아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 최근 하서 대감이 어떤 분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영남에 퇴계 이황이 있다면 호남엔 하서 김인후가 있다.
성균관 문묘에 배향된 유학자가 설총,최치원,안향, 정몽주,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성혼, 이이를 비롯해
총 열여덟분이라고 합니다.
하서 김인후는 호남사람으로는 유일하게 문묘에 배향된 인물이었습니다.
그를 모신 필암서원은 임금이 편액을 내린 사액서원이 되어 나라의 보호를 받았구요.
당연 호남 유학자들 사이에서 하서 대감은 태산같은 존재였습니다.
하늘 천 땅지 조차 모르고 일년 열두달 농사만 짓는 백성들도 한번쯤
들어보았을 이름...
어린 시절 증조할아버지 무릎아래에서 한학을 공부했던
아버지로서는 자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겠지요.
하지만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그리 사랑하지 않았던 듯 합니다.
너무 짱짱한 집안의 딸이라 부담스러워했던 듯 해요.
자격지심도 있었을 것 같고요.
암튼 광주 송정 사는 선배집에서 사흘간 자고 올라오는 길에
장성 필암서원을 들렀습니다.
생각보다 보존상태가 좋더군요.
서원을 돌아보면서 얼마전 읽은 "조선의 아버지들"이란 책내용을
떠올려 봤습니다.
하서 대감은 서릿발 같이 준엄한 유학자이기 전 딸을 너무나
아끼고 사랑하는 아빠였습니다.
요샛말로 치면 딸바보지요.
나이를 먹어가니 생전 아버지가 앞뒤 문맥없이 했던 말들이 문득문득 떠오릅니다.
하서대감 이야기도 그렇구요.
최근 연구조사에 따르면 우리 DNA는 부계보다 모계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저는 어머니에게 유전형질을 더 많이 물려받은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만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아버지 살과 뼈 속에 하서 대감의 유전자가 있었다면 제 살과
뼈 속에도 유전자가 남아 있을테지요.
2017.8.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