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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4 전라남도

나주 홍어거리

by 만선생~ 2024. 7. 14.
 
 
 
광주 송정리 한기형네 집에서 자고 아침 일찍 나주학교 교장이신 홍양현 형을 만났다.
형은 나주가 고향으로 나주에 대해선 모르시는게 없다.
인맥도 사방팔방으로 얽혀 한다리만 건너면 모두가 아는 사이다.
그런 형이 올해 두가지 야심찬 계획을 세우셨다.
하나는 홍어 사업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홍어에 대한 책을 쓰는 거다.
(형 이거 밝혀도 되죠?)
형의 하루 일과는 나주 홍어의 거리를 걷는 것으로 시작했다.
거래처 사장님을 만나고 더불어 홍어 가게들을 돌아보았다.
가게마다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찔렀다.
홍어가게 역시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의 부족한 노동력을 메꾸고 있었다.
어딜 가든 외국인 노동자들이 없음 일이 안된다.
마지막으로 들른 집은 부부가 열심히 홍어 손질을 하였다.
손놀림이 아주 익숙했다.
벽에는 티브 화면을 캡처한 사진들이 걸려있었다.
공중파 방송에 출연했었다고 한다.
홍어와 더불어 내 눈길이 향한 것은 2층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이었다.
폭이 좁고 가팔랐다.
2층으로 올라가도 되냐고 묻자 괜찮단다.
그리하여 2층으로 올라갔다.
집 구조가 일본식이란 걸 금세 알 수있었다.
1층으로 내려와 일본식 집이라 말하자 그렇단다.
해방 되기전 일본 사람이 지었는데 80년 세월이 흐른 지금도 집이 멀쩡하단다.
잘 지었다는 것이다.
하긴 그렇다.
일본이 패망하리라곤 눈꼽만큼도 생각을 안했을 것이다.
당연 영원히 발붙이고 살아갈 생각으로 튼튼하게 지었다.
지진이 일어날 걸 감안해서.
가게 밖으로 나와 건물을 보니 건물이 특이하다.
모서리를 원통형으로 만들었다.
마치 감옥의 초소처럼 창문을 통해 외부를 바라볼 수 있도록 설계를 하였다.
이런 예가 또 있는지 모르겠다.
태극서점이란 간판도 눈길을 끌었다.
영산포가 번화하던 시절엔 책을 사러오는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졌을테다.
남녀간 약속장소였을 지도 모른다.
가히 책의 전성시대였다.
그 때는 아무도 예측 못했을 것이다.
출판이 사양산업이 될 줄은.
 
2023.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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