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9년 12월 김제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열차의 차창 밖으로 오산이란 표지판을 보았다.
작은 역이었지만 서울이 멀지 않았던 탓에 지금까지도 뚜렷이 기억한다.
그리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2001년부터 2013년 까지 경기도 오산에서 살았다.
가족들이 IMF로 인해 서울을 떠나 오산에 자리 잡을 때 나도 같이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인구 5만의 작은 도시가 10년 사이 인구 16만의 중소도시가 되었다.
대부분 서울과 그 인근에서 유입된 인구였다.
그 사이 논과 밭은 택지로 전환돼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고
허름한 거리는 상업지구로 변모했다.
두 번에 걸쳐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치뤘고 그 때마다
민주당 후보와 민노당 후보에 표를 주었다.
오산은 딱히 기억될 만한 게 없었다.
수려한 산과 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문화재가 있는 것도 아니다.
도시를 대표할만한 산업시설도 없다.
가족들이 가까이 있다는 것 말고는 오산에 살아야 할 필요가 없었다.
오산에서 친구를 사귄 적도 없고 가슴 떨리는 연애를 했던 것도 아니다.
소소한 추억만 몇 개만 남아 있을 뿐이다.
돌아보면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무얼했나 싶다.
하나 있기는 하다.
오산 외곽에 샀던 작은 평수의 아파트 값이 올라 얼마간의 시세차익을 거둘 수 있었던 거다.
서울에 있는 아파트에 비할 바 아니지만 불로소득은 불로소득이었다.
아파트 값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신화가 이렇다 할 경제 활동이 없는 내게도 해당되었던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컴퓨터는 생활 필수품이 되었다.
컴퓨터 없이는 경제 활동 자체가 불가능하다.
문제는 이 게 주기적으로 한 번씩 말썽을 일으킨다는 거다.
더구나 기계치인 나로선 이상이 컴퓨터에 생기면 절대적으로 컴퓨터 가게 사장님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말하자면 컴퓨터 가게 사장님에게 나는 때마다 자기를 찾아주는 고객이었다.
사장님은 가게는 부인에게 맡기고 대부분의 시간을 밖에서 수리하는 것으로 보냈다.
사장님이 집으로 오면 컴퓨터를 고치는 동안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고향이 오산 덕절리라고 했다.
오산에서 나고 오산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사장님은 무료해서인지 묻지도 않은 말들을 한다.
주로 자기 신상에 대한 이야기다.
고객들 이야기하며 형과 왕래를 끊고 지내게 된 이야기까지 특별히 나를 의식하지 않고 계속 말을 꺼낸다.
하루는 이명박 대통령 이야기를 했다.
속았다는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절대 찍지 않았을 것이라는.
나는 사장님 이야기를 듣는 와중에 사장님 특유의 말투를 발견했다.
사투리다.
수도권인데 무슨 사투리인가 싶지만 오산은 서울에서 50킬로 떨어진 곳에 있으니 서울과는 뭔가는 다를 터다.
어딘지 모르게 섞여있는 충청도식 억양 말이다.
오산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평택에 가면 말투가 확연히 다르다.
충청도식 억양이 좀 더 강하다.
물론 도의 경계를 넘어 천안에 가면 완전한 충청도 말이다.
요즘 최순실 정유라 비리를 파헤쳐 핫하게 떠오른 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지역구가 오산이다.
오산에서 나고 오산에서 살고 있는 순도 100퍼센트의 오산 사람이다.
그래서일까 말소리를 듣고 있으면 컴퓨터 사장님 말투와 겹친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미국 유학까지 다녀왔지만 고향 말투는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나 역시 서울말을 쓰고 있지만 김제 억양이 말 곳곳에서 뭍어난다.
그리고 고향 사람을 만나는 순간 완전한 전라도 사람이 되고 만다.
찰진 남도의 말과는 다른 북도 특유의 느릿한 말.
팟캐스트 방송을 듣다보니 정봉주 전국구에 고정 출연하는 최강욱 변호사 말투가 유난히 귀에 꽂히는 것은
동향 사람이기 때문이다.
김제와 전주는 같은 생활권 아닌가!
10년 넘게 살았던 도시 오산.
지금은 명절과 제삿날 그리고 어머니 생신날 한 번씩 간다.
아... 사그라지던 트롯을 다시 살려낸 여가수 장윤정 그녀의 고향이 다름아닌 오산이다.
백의종군하던 이순신 장군이 서울을 출발해 아산으로 가는
길에 오산 아무개 집에서 점심을 먹었고 인천 감옥에서
탈출한 청년 김구는 오산의 감방 동기 집에서 몇날 며칠을 머무르다 남도로 향했다.
그러니까 오산이 별볼일 없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란 이야기...
2016.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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