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무살 무렵 사부님께서 느닷없이 말씀하셨다.
"이번 일 끝나면 양복 한벌 사줄게."
"아... 네... 감사합니다"
속으로 웬 양복인가 싶었지만 전혀 기대한 바는 아니었다.
양복을 입고 싶은 것도 아니고.
하지만 일이 끝났어도 싸부님은 양복은 사주지 않았다.
이후로도 사부님께선 공수표를 몇 번 더 날리셨다.
의미없는 공수표였다.
능력은 안되는데 제자앞에서 뭔가 호기를 부리고 싶었던 게다.
그렇다고 사부님을 뭐라하지 않는다.
그러려니 할 뿐.
나역시 살아오면서 몇번인가 호기를 부렸다.
모두 여자 앞에서였다.
남자 앞에서 부린 호기라곤 술값을 내는 정도니 호기라고 부를 것까지도 없다.
그런데 여자 앞에서 부린 호기는 단위가 다르다.
" 그 돈 안갚아도 돼. 너 다써"
정말이지 호기를 부릴 땐 내가 남자답고 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돈이 아쉬웠고 일부나마 그 돈을 쓰고 싶었다.
나는 여자 앞에서 돈의 일부를 돌려주면 안되겠냐고 물었다.
여자는 남자가 어떻게 한입두고 두말을 하냐며 안된다고 했다.
돈을 돌려받지 못한 건 둘째치고 '가오'만 떨어진 셈이다.
누구나 그러하듯 나역시 째째하단 소릴 듣고 싶지 않다.
남자답고 싶다.
어려운 이를 위해 내 재산 전부를 내어주는 의기를 발휘해보고 싶기도 하다.
"마음껏 마셔. 내가 다 낼테니"
정말이지 고급 술집에서 이런 호기를 한번쯤 부려보고 싶다.
그러나 인생은 마라톤이다.
체면이 밥먹여주지 않는다.
설령 째째하단 소릴 들어도 나중 곤란을 겪지 않기 위해서 호기는 삼가야한다.
정말 큰 대의가 아니라면.
2021.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