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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학급석차 68등

by 만선생~ 2024. 11. 17.

중학교 2학년 때 학급석차 68등을 했다.
밑으로 두 명 있었는데 둘 다 운동부원으로 수업에 들어오는 날이 거의 없었다.
실질적으로 꼴지인 셈이다.
일부러 할려해도 하기 힘든게 꼴찌라는데 어떻게 저런 처지가 됐을까?
생각하면 정말 공부를 싫어했던 것 같다.
수업내용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학습지진아의 전형이다.
그렇다고 어느 순간 깨달음을 얻어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도 아니다.
학창시절 내내 성적은 바닥을 기었다.
그렇다고 사교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운동을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집이 잘 살지도 않았다.
생활보호 대상자로 수업료를 면제받았다.
대학은 꿈도 꾸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87년 민주화 대투쟁 때에는 혼자 거리에 나가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쳤다.
목소리는 한없이 안으로 기어들어갔지만 독재타도를 외쳤던 건 분명하다.
최루탄을 뒤집어쓰고 눈물과 콧물 범벅인 채로 백골단에 쫓겨 달아나 학생들 틈에 섞이게 되었다.
한 학생이 혼자 외떨어져 있는 내게 물었다.
"어느 학교 학생이세요?"
나는 아주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학생 아니예요"
그랬다.
민주화 운동은 대학생만의 전유물이 될 수 없었다.
깨어있는 시민이라면 누구라도 나설 수 있다.
학급석차 68등이었다고 데모하지 말란 법은 없지 않은가!
저들은 불법시위로 규정했지만 말이다.
오늘 문득 68등의 삶이 궁금했다.
그러니까 내가 다니던 학교의 16개 반 68등 아이들의 삶 말이다.
모르긴 해도 십중팔구 중산층에 들지 못하고 하층민의 삶을 살고 있을 것 같다.
시험성적이 사람의 신분을 결정하는 한국사회에서 68등이 갈 곳은 뻔하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생활에 쫓겨 일년 열두달 책은 거의 읽지 않을 것이고 글이란 것은 쓸 생각조차 못할 것이다.
나같은 돌연변이를 제외하면 말이다.
참 슬픈 일이다.
그런데 더 슬픈 건 이 가운데 나보다 소득이 적은 이는 아무도 없을 거란 사실이다.
68등 가운데서도 가장 실패한 인생...
혹 이글을 읽는 사람들 있다면 저를 위해 술한잔 사주시길 바랍니다.
11월 14일 광화문 시위에 나갔다 중국집에서 짬봉 국물을 안주로 마셨던 이과두주가 맛있더군요.
바라건대 68등도 기죽지 않고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왔음 좋겠습니다.
물론 저도 말입니다. ^^

2015.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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