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19일 ·
무협활극 식의 말을 하는 선배가 있다.
선배의 말은 항상 과장돼 주의가 요망된다.
왜 유독 선배 주위 사람들에겐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을까?
만화 "소년탐정 김전일" 에서 유독 김전일 주위에 살인사건이
계속 발생하는 것처럼 말이다.
선배의 얼굴은 무표정하다.
사람들 앞에 나서 말을 할 때는 더 그렇다.
아무리 웃긴 이야기를 해도 표정의 변화가 없다.
어쩌다 웃긴 이야기를 하려다 먼저 흥분해 웃고마는
나와는 너무나 다르다.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고 말을 해나가는 선배.
스토리텔러로서 그만한 조건이 또 있을까 싶다.
조선시대라면 전기수가 되어 생업을 이어나가리라.
선배의 말이 재밌다고 생각한 난 종종 말했다.
"형 스토리 고민 할 거 없이 그 걸 만화로 그려 응"
하지만 선배는 한 번도 스토리를 써서 남 앞에 내보인 적이 없다.
한국만화의 병폐인 대본소 시스템 속에서 남이 쓴
스토리를 받아 그리고 있을 뿐이었다.
근래엔 유료웹진에 성인 에로만화를 그리는데 그 역시 자기 스토리가 아니다.
특별히 인기가 있는 게 아니어서 겨우 생활해나가는 수준이다.
얼마 전엔 그마저도 끊겨 생활이 더 어려워졌다고한다.
난 무협지를 싫어한다.
구체적인 삶의 모습이 그려져 있지 않아서다.
마찬가지로 서양 환타지도 싫어한다.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같은 시리즈를 한 편도 보지 않았다.
환타지 영화를 몇 편 봤지만 볼 때마다 시간이 아깝단 생각이 들었다.
선배의 말을 굳이 분류하자면 무협지와 액션활극을
섞어 놓은 그 어디 쯤이다.
내가 선배의 말에 실증을 느끼기 시작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삶의 진실이 빠져있는 말.
마치 화학첨가물이 가득한 인스턴트 식품같다고나 할까?.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말하는 능력이 쓰는 능력으로
연결되지 않음이다.
말을 재밌게 잘한다고 해서 글을 재밌게 잘 쓰는 게
아니듯 재밌는 만화가 그려지는 게 아니다.
늘 그렇듯 장삼이사의 삶은 지루하다.
일상으로부터 탈출을 꿈꾸지만 결과는 언제나 제자리다.
이 때 필요로 하는 것이 이야기다.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삶을 경험한다.
특히 적당히 과장된 이야기는 메마른 삶을 적셔주는
청량제다.
이 같은 이유로 지금도 수많은 소설 만화 드라마
영화 같은 콘텐츠들이 만들어진다.
삶의 진실을 알려주는 이야기도 좋지만 조미료가 잔뜩
들어간 무협활극식 이야기도 좋다.
궁금하다.
혹 내 이야기도 무협 활극식 이야기로 각색 돼 어딘가에서
떠돌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 이야기는 각색되고 말고 할게 없네.
미안해요 형.
소재 제공을 못해줘서...
전 지금까지 너무 심심하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심심하게
살 것 같은 불안이 엄습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