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層看了一層看
한층 다 보고 또 한층 보면서
步步登高望漸寬
걸음걸음 올라 점점 넓게 바라본다
地面坦然平似削
지면은 깎은 듯 평평한데
殘民破戶平堪觀
쇠잔한 백성의 무너진 집을 차마 볼 수 없네
- 진각국사 혜심, '황룡사 목탑에 올라서(登皇龍塔)'

#혜심
혜심(慧諶: 1178년~1234년 7월 23일(음력 6월 26일))은 고려의 승려이다. 자는 영을, 호는 무의자, 속명은 최식(崔寔)이다. 시호는 진각국사(眞覺國師)이다.
1201년 신종 때 사마시에 합격하여 태학에 들어갔다. 그 후 어머니의 병환으로 집에 머물면서 불경을 탐독하였다. 어머니가 사망한 후 조계산에 들어가 보조국사 지눌 밑에서 승려가 되었다.
스승인 지눌의 생전에는 직책을 맡는 것을 거듭 사양하였으나, 1210년 지눌이 죽자 왕명으로 수선사로 들어가 그의 뒤를 이어 수선사 결사의 2대조가 되었다. 그 후 고종이 즉위하자 선사에 제수 되었으며 이어 대선사에 올랐다. 승과(僧科)에 응시하지 않고 승직에 오른 드문 경우이다.
보조국사 지눌의 뒤를 이어 보조의 선(禪) 사상을 발전·종합하고 간화선 수행방법을 고려불교에 정착시킨 인물로 평가받는다.
송광사에 그의 진각국사 원조탑(覺圓照)이 있다. 저서로 《선문염송》·《심요》·《무의자 시집》 등이 있다.
몽골의 침략으로 불타없어진 황룡사 목탑.
그 탑에 올라 시를 쓴 이가 있었구나.
지금까지 보존되었으면 한국을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돼 있을텐데...
아깝다.
초나라 항우는 진나라 수도 함양에 들어서면서 궁궐을 모조리 불태웠다.
화려함의 상징인 아방궁도 이 때 불타없어졌다.
항우 뿐만 아니다.
정복자들은 정복지의 궁궐과 관아 그리고 사원을 불태워 잿더미로 만들었다.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고 금은보화를 빼앗았다.
고려를 침략한 거란과 몽골도 마찬가지다.
그토록 애써 지은 궁궐은 흔적없이 사라졌다.
정복자로선 이보다 더 쉬운 패가 없다.
이토록 손쉽게 정복지의 전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니.
누구라도 불을 지르고 싶은 유혹에 손이 간지러울 것 같다.
하지만 예외는 있었다.
압록강을 넘어 물밀듯 한양에 입성한 청나라 황제 홍타이시는 궁궐에 손대지 않았다.
삼전도에서 삼고구배의 항복 의식을 치른뒤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수십만이나 되는 포로를 끌고 갔으나 불을 지르진 않았다.
오스만 투르크의 마흐메트 2세는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킨뒤 성소피아 성당을 이슬람 성전으로 사용했다.
무너뜨려 없애기엔 너무나 아까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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