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지만 나의 30대는 깜깜 절벽이었다.
찾아오는 친구도 없었고 갈 곳도 없었다.
돈은 더더욱 없어서 현관엔 펼쳐보지도 않은 납입 고지서가
늘 수북히 쌓여 있었다.
해결할 수 없는 생활고.
나는 하루 종일 생활구인 정보지인 벼룩신문만 뒤적였다.
“별 수 없구나. 닭 털뽑는 공장이나 가야지.”
그 때였다.
살고 있는 빌라 뒤편에 아파트 공사가 시작됐고 그 곳에 일자리가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든 건.
그래서 컨테이너로 된 현장 사무소에 찾아갔더니 바로 오케이였다.
일당 5만원의 설비기사 조수가 된 것이다.
설비란 무엇인가?
화장실 변기, 욕조, 수도, 보일러 배관에 관한 공사다.
하루 종일 구멍을 뚫고 배관을 설치한다.
일에 대한 어떤 흥미도 가질 수 없었다.
일당 5만원을 생각하며 지겨움을 견뎠다.
공사는 토요일은 물론 일요일에도 계속되었다.
가끔 야근을 해야할 때가 있었는데 그 때는 일당의 1.5배를 쳐줬다.
하루는 소장이 나더러 근태가 좋다고 했다.
아무리 일을 못해도 나왔다 안 나왔다를 반복하는 사람보다는
낫다는 뜻이었다.
나보다 한 살 위로 하청에 하청을 받는 사람이 있었는데
아주 성실했다.
어느날 그이가 나더러 남의 일만 하는 사람으로 남지
않으려면 일을 잘 배워두어야 한다고 진심어린 조언을 했다.
고마웠지만 설비 일을 하며 내 인생을 마치고 싶진 않았다.
두 달을 꼬박 채우고 일을 그만두었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 지에 대한 계획 따윈 없었다.
나는 중고차 시장에 가 있는 돈을 모두 털어 98식 마티즈를 360에 샀다.
80만원 정도 하던 보험료는 카드 할부.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자가운전자가 된 것이다.
실컷 여행이나 다녀야지.
그런데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있었다.
기름값.
불행하게도 나는 이후에도 돈을 벌지 못했고 여행은 꿈속에서나 존재하는
단어가 되었다.
2010년.
10년 가까이 타고 다니던 차를 폐차하며 여행다운 여행을
간 곳이 어디인지 따져보니 경남 남해도에 2박3일 동해 망상
1박 2일 전남 광주에 1박 2일 동안 다녀온 것이 전부였다.
여기까지다.
설비와 관련된 이야기는.
이후 설비 일을 했던 경험을 살려 수도배관을 고치는 일 따위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오늘 이렇게 설비 일을 꺼내든 것은 얼마 전 내가 공사했던
아파트 단지를 차로 스치며 지나기 때문이다.
내가 흘린 땀방울이 층층마다 배여 있을 아파트.
우리는 아파트 값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신화를 믿었다.
믿음을 넘어 종교적 맹신에 가까웠다.
그리고 신화는 아직도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돌아보니 신화 속의 나는 미미하다고 말하기조차 민망한
아주 작은 존재로서 곁불을 쬐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가방끈 짧은데다 인맥도 없고 기술도 없는 내가 두 달 동안
쉬지 않고 일하며 돈을 벌수 있었던 것!
운이 아니었을까?
남들이 볼 때 운 같지도 않은 운이지만.
2016.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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