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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생활

내 이름 정용연

by 만선생~ 2025. 2. 21.

 
 
용연이란 이름은 흔치 않다.
국내 최대 성씨인 김, 이, 박을 뺀 용연은 더 적다.
특히 내 이름은 입을 오무려야 하는 이응이 연달아 세 개 씩이나 들어가
발음하기가 어렵다.
학창시절 선생님들이 나를 부를 때 발음이 엉겼던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나조차도 발음이 쉽지 않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를 용연이 아닌 현으로 기억하는 사람도 많았다.
나와 제법 사귄지 오래된 친구 녀석도 용현이라고 해 나를 열받게 했다.
심지어 내가 일 년 이상 문하생으로 있던 만화가 선생님께선 자신의 책을
사인해 줄 때 용현이라고 쓰셨다.
“저... 선생님 용현이가 아니라 용연입니다.”
“아 그렇구나”
그 책은 지금도 현을 연으로 수정한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몇 년 전엔 오랫만에 선생님을 찾아 뵈었더니 선생님께선 자신의 그림을 선물로 주셨다.
나는 선생님의 제자 사랑이 너무도 고마워 두루마리로 된 작품을 펼쳐드는데
안타깝게도 내 이름은 용연이 아닌 용현이었다.
“선생님 제 이름이 현으로 돼 있습니다.”
“어 그래...?”
선생님은 조금 무안해 하시며 칼로 현의 히읏 위를 긁어 연으로 만들어 주셨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무심하실 수가...
어딜 가면 꼭 선생님 문하출신이란 걸 밝히는데 이렇게 실수를 하시니 서운한
감정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반대로 내 이름을 잘 기억해 줘 고마운 경우도 있었다.
연수원에서 처음 만났던 스토리 작가 분께서 몇년 뒤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한치의 망설임 없이 "어...용연씨~“라고 불러주시니 너무나 고마웠다.
그 후 나는 어딜 가서라도 그 스토리 작가 분을 이야기 할 땐 항상 좋게 말한다.
나는 데뷔작을 필명으로 발표했다.
군복무 시절 자대에 배치받아 물려받은 군장에 장재희란 이름이 써 있었다.
나는 제대할 때까지 늘 장재희란 이름이 써있는 군장을 찾았고 그 이름이
꼭 내 이름처럼 느껴졌다.
글 그림 장재희.
내 만화가 실린 잡지는 유통망을 통해 전국 가판대에 깔렸다.
가판대에서 내 작품명과 함께 장재희란 이름을 발견하고 가슴이 뛰고
심장이 멎는 듯 했다
하지만 본명이 아닌 필명을 바라볼 때의 느낌은 묘했다.
하루는 원고를 찾으러 갔더니 편집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성까지 바꾸신 거네요.”
이후 장재희란 필명을 쓰지 않았다.
주위사람들로부터 여자로 착각하게 만든다는 지적을 들었던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나는 필명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머리를 굴렸다.
생각나는 이름을 종이에 써보기 수십차례였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거다 싶은 이름은 없었다.
왜 아버지는 누구나 기억하기 쉽고 편히 부를 수 있는 이름을 지어주지 않은
것일까?
발음 따윈 전혀 고려하지 않은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보통의 생활인이라면 몰라도 작가의 이름은 남달라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나는 내 이름에 대한 고민을 한 유명동화작가 앞에서 털어놓았다.
대답은 쓸데없는 고민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나는 주위사람들로부터 내 이름이 어떤지 모니터링을 하기 시작했는데 굳이
바꿀 이유가 없다고들 했다.
이름이 어렵긴 하지만 흔하지 않아 좋다는 것이다.
딜레마였다.
나는 작가들의 필명을 유심히 관찰했다.
하나같이 애써 지은 이름은 없었다.
운명적으로 와닿은 이름이었다.
시인 황재우가 황지우가 된 것은 편집자의 실수였다.
재우를 지우로 잘못 쓴 것인데 이를 수정하지 않고 자신의 필명으로 삼았다.
만화가 권가야는 가야왕국의 가야가 아니라 사람들이 “권가야~”라고 불러
자신의 이름이 되었다.
만야 그가 정씨였다면 정가야가 됐을지도 모른다.
나에겐 운명적으로 와닿는 이름이 없었다.
아직까지는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 운명이었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돌아보면 초등학교 동창 가운데 나만큼 매체에 이름이 오르내린 이가 없다.
많지는 않지만 신문지상에 내 기사가 실리기 여러 번이었고 방송도 탔다.
무명의 만화가지만 매체에 이름이 오르내릴 기회는 한 두 번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서랍 속에 쌓여있는 작품들이 완성돼 세상에 나오면  여러 매체에 소개될 것 같다.
일반인들은 누릴 수 없는 작가만의 특권이다.
누구는 이름을 알리는 것이 부질없다고 한다.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는데 그깟 이름이 무슨 소용있냐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은 헛된 명성에 집착하는 어리석은 이다.
나의 내면은 작품과 이름을 세상에 알리고픈 열망으로 끓어오르고 있다.
정용연.
어려운 이름이지만 남은 생애 이 이름을 알리기 위해 살아가고자 한다.

2019.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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