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시절 집가까이 당너머란 작은 마을이 있었다.
진한 쌍거플에 속눈섭이 긴 같은반 친구 성옥이가 살고 있는 동네다.
성옥이네 집은 마을에서 유일한 초가집이었다.
담도 없었다.
마당 옆엔 작은 텃밭이 있었고 집은 세 칸이 못되었다.
부엌 하나에 방이 둘.
좁디좁은 마루에선 한발짝 뗄 때마다 삐걱이는 소리가 났다.
누구나 그러하듯 나의 어린시절 또한 노는 것에 흠벅 빠져살았다.
정신없이 놀다보면 어느새 하루해가 저물곤 했다.
그날도 성옥이네 집에서 어두워질 때까지 놀았다 성옥이 아버지는 우리에게
저녁을 차려주었다.
노느라 피곤했나보다.
몸이 천근만근 집에 돌아갈 생각을 못하고 잠이 들고 말았다.
무슨 소리일까?
어둠 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자세히 들으니 기도소리였다.
주여 주여...
성옥이 어머니였다.
하얗게 센 머리에 비녀를 꽂고 다니던 성옥이 어머니.
새벽 임상리에 있는 교회에서 철야기도를 마치고 돌아와 기도를 이어가시는 것 같았다.
교회와 무관하게 살아온 내겐 참 낯선 경험이었다.
나중 어머니께 들으니 땅 한 평 가진게 없는데다
남편은 나이가 많아 일을 못했다고 한다.
대신 성옥이 어머니가 이마을 저마을 다니며 품을 팔았다고 한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누나까지 합하면 세식구를 여자 혼자 노동일을 하여 멱여
살리는 셈이었다.
참으로 고단한 삶이다.
아마도 교회가 삶의 큰 위안이 되어주었던 것 같다.
이건 숫제 나의 짐작이다.
모르긴해도 성옥이 어머니가 교회에 다니기 전엔 서낭당을 다니며 기도를 했을 거 같다.
기독교가 전래되기 전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은 일월성신을 믿었고 당산나무 아래
있는 서낭당에 가 기도했다.
자신과 자신의 식구들이 무탈하게 살기를 바랬다.
서낭당은 마을 입구마다 다 있었다.
당너머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마을로 들어가는 어느 지점 서낭당이 있었을 것이다.
본격적으로 서낭당이 사라진 것은 새마을 운동과 함께다.
새마을 노래에서 알 수있듯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혔다.
수많은 신작로가 나며 서낭당은 헐렸다.
미신이니 보존할 이유가 없었다.
집권세력 자체가 전통문화를 혐오했다.
길이란 길은 모두 아스팔트로 뒤덮인 지금은 서낭당을 아예 찾아볼 수가 있다.
서낭당길이나 서낭당 고개 혹 당산 당고개 같은 지명으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어제는 다가오는 어버이날을 맞아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에 작은형 회사에서
가족모임을 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며 형네 회사 가까이 있는 서낭당을 찾았다.
근래 복원한 건물이지만 서낭당 형태는 유지하고 있었다.
수령 300년 된 느티나무 아래 자리잡은 작은 기도 터.
지금은 누구의 발길도 닿지않는 외진 곳에 있을 뿐이었다.
힘없는 백성들이 마음을 의지했을 장소가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께 밀려 이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서있다.
20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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