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쓰건 못쓰건 남이 봐주 건 안봐주건 일상적으로 글을 쓰며 사는
삶이 되었다.
예상치 않은 삶의 행로다.
이십대의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왜냐면 글쓰는 모습을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그림 스킬을 익히는데 썼다.
간간이 스토리란 걸 썼지만 글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었다.
스토리는 장면과 대사 위주로 진행되었다.
물론 이야기를 풀어가는 능력은 형편없었고 작품다운 작품을
발표하지 못했다.
막연하지만 십대부터 글을 잘써야한다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글을 쓰려면 겁부터 났다.
이따금 일기와 편지글을 썼지만 지속적이진 않았다.
만화 스토리와 마찬가지로 글도 무엇을
써야할 지 몰랐다.
서른 무렵. 평생의 꿈이었던 만화를 포기했다.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일용직 노가다와 파견직 노동자로 몇년의
시간을 보냈다.
우리 사회 가장 아래에 있는 밑바닥 삶이었다.
이미 포기한 만화를 다시 그릴 순 없었다.
다만 내안에 차오르고 있는 무언가를 끄집어내야 했다.
그리하여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모니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라면 한 봉지에 얼마이고 차비가 얼마인지를 썼다.
나아가 내가 만났던 밑바닥 인생들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그런 글들을 후배 홈페이지 게시판을 비롯 조그만 커뮤니티에
올리곤 했다.
글에 대한 반향은 없었지만 얻은 게 있다.
글쓰기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이다.
연어가 물살을 거슬로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듯 나역시 만화를 버리지
못하고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만화를 그려 먹고 산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월세가 밀리고 수북히 쌓인 고지서들은 줄어들줄 몰랐다.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인력사무소에 나갈 채비를 했다.
당장의 끼니부터 해결해야 했다.
이 것도 운명일까?
그렇게 인력사무소에 나가야 할 때마다
누군가 가느다란 새끼줄 하나를 내려주곤 하였다.
2년가까이 한겨레신문에 연재한 한컷짜리 만화 사이사이도
그 가운데 하나다.
나를 기특하게 본 박재동 선생님이 신문사에 소개를 해주신 거다.
가방끈 짧고 가진 것도 없는 외모도 별볼일 없는데다
화술도 신통잖은 루저의 삶!
그럼에도 나는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했다.
아니 내가 살아있는 이유를 증명해야했다.
그 것은 책 출간이었다.
우리 가족의 역사와 내 자전적 삶을 다룬 정가네소사를 무려 7년이란
세월동안 그렸다.
온 시간을 "정가네소사" 하나에 쏟아 부은 건
아니지만 "정가네소사"를 생각하지 않는 시간은 없었다.
"정가네소사"는 2012년 도서출판 휴머니스트에서
세권짜리로 출간되었다.
책은 팔리지 않았다.
어쩌면 팔리지 않을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남의 이야기를 무엇하러 아까운 돈을 지불하며 사겠는가?
그럼에도 나는 한 권이라도 더 팔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그 때까지는 낯설기만 한 sns를 시작했다.
페이스북에 열심히 홍보글을 써 올렸지만 책은 팔리지 않았다.
이따금 사주시는 분들이 계실 뿐이었다.
홍보를 위해 시작한 페이스북이지만 하다보니 어느덧 나의 개인
일기장이 되었다.
누가 봐주건 봐주지 않던 지난 10년동안 페이스북에 꾸준히 글을 써왔다.
덕분에 좋은 분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그 분들을 직접 찾아가 뵙기도 했다.
지금도 소중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만날 수 없는 인연들이다.
내친 김에 만화 이야기를 해보자.
후배들 가운데 누군가 스토리를 제공하지 않으면 원고를 하지 않는
친구들이 있다.
경우에 따라선 일년동안 단 한 페이지도 그리지 않는다.
그리고 싶은 욕구는 머리 끝까지 차오르지만 무엇을 어떻게
그려야할지 몰라서다.
막연히 그림 연습만 하고 있을 뿐이다.
어떤 이들은 이해를 못하겠지만 나는 충분히 이해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나 역시 그랬으니까.
뭔가를 하고 싶은데 무엇을 해야할 지 모르는 것!
세상에 이만한 괴로움이 또 있을까싶다.
누군가 스토리를 제공하며 일을 같이 해보자 제안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과거 그런 제안을 이제나 저제나 하며 기다렸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고립돼 있는 친구들에게 그런 기회는
찾아오지 않는다
스스로 매듭을 풀어야 한다.
돌아보면 스토리가 없어 고민하는 친구들에겐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글을 전혀 쓰지 않는다는 거다.
그러면서 기가막힌 스토리가 생각나기를 바란다.
단 한 발짝도 떼지 못하고 우주끝으로 날아가길 바라는 거다.
주제넘지만 나는 기회있을 때마다 그런 친구들에게 말한다.
"뭐라도 좋으니 일단 써.
정 쓸게 없으면 라면값이라도 쓰고.
글이란 게 그래.
쓰다보면 쓸거리가 없어지는 게 아니고 쓸 거리가 자꾸만 생기거든.
내 예를 들어 그렇긴 한데 쓰다보니 구성력이 생기더라.
수미상관 구조를 자연스레 터득하게 되는 거지.
만화 스토리도 그렇지 않을까?
글도 스토리고 만화도 스토리니 말야."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나의 조언을 받아들이는 친구는 하나도 없었다.
반대로 생각해보자.
만화를 잘 그려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 친구들은 하나같이 글을 잘썼다.
만화 스토리와 글과의 관계는 뗄레야 뗄 수 없다는 증거다.
글은 자신과의 솔직한 대화다.
나아가 세상과 통하는 창구다.
그러므로 나는 잘쓰건 못쓰건 또 누가 봐주건 봐주지 않건 쓴다.
일단 써야 만화 스토리도 하나쯤 걸려드니 말이다.
뿐인가 뇌를 활성화 시켜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
돌봐줄 사람이 없다면 적어도 정신만은 잃지 않아야한다.
이순신 장군이 지금까지 추앙받는 건 난중에 일기를 썼기 때문이다.
일기를 남기지 않았으면 당시 전쟁 상황을 세세히 알기도 어렵고
장군의 고뇌 또한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도 그렇고 미래도 그렇고 세상에 발자국을 남기는 것은 쓰는 자이다.
20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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