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만화는 일본만화의 절대적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다.
아무리 부인하고 싶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린시절 너무너무 재밌게 봤던 만화영화들이 일본에서 제작됐다는 걸
알았을 때의 충격과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그럼에도 그 때 봤던 만화영화들이 싫어지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토록 재밌게 본 만화가 일본 만화를 베낀 해적판이었다
해도 그 시대를 애써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한국인으로서 한국인이 그린 만화들을 좋아하지만 일본인들이 그린 만화
역시 좋아한다.
일본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만화 선진국이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만화를 즐긴다.
독자층이 광범위한만큼 작가층도 두텁다.
일본엔 6,70년대 주류 상업만화에 대항한 일련의 작가군이 있었다.
이들은 <<가로>>란 이름의 만화잡지에 작품을 발표했는데
크나큰 예술적 성취를 이루었다.
시라토산페이 츠게요시하루 미즈키시게루 같은 작가들이다.
만화인으로 이들 작품을 찾아서 읽어보고 싶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번역돼 있는 작품이 없다.
할 수없이 어렵사리 구입한 책들을 읽지 못한 채 그림만 들춰본다.
누군가 이들 책을 번역해 출판해줬으면 좋겠다.
한국만화를 사랑하듯 나는 일본 만화도 사랑하니 말이다.
얼마전 뜻하지 않은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일본은 물론 동아시아 만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지상요일. 이케가미
료이치 이야기다.
이케가미 료이치는 하드보일드한 상업 액션만화를 그리는 작가다.
철저히 스토리 작가와 협업을 해왔다.
헌데 그가 요괴만화로 유명한 미즈키 시게루의 제자로 <<가로>>를 통해
작품을 발표했었다고 한다.
그 때는 스토리도 직접 썼단다.
믿기지 않지만 미즈키 시게루, 츠게 요시하루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니
정말 그렇다.
나의 영웅들이 한데 모여 있는 사진.
마치 우리 부모님 약혼 사진을 보는 듯 아련한 느낌이다.
나는 이케가미 료이치 선생이 평생 남의 쓴 스토리만 받아서 그리다 생을
마감할 줄 알았다.
헌데 70대 중반이 넘어 자기 스토리로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초기 가로를 통해 작품을 발표했었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아무튼 경이롭다.
그리고 일본 만화의 세계가 얼마나 넓고 깊은지 새삼 깨닫는다.
예술엔 국적이 없다.
다만 작품이 있을 뿐.
202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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