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는 신라 천년으로 기억된다.
그도 그럴 것이 불국사 석굴암 월지 첨성대 에밀레종 감은사지 포석정 김유신묘
대능원등 신라시대 유적들이 시내 곳곳에 흩어져 있다.
수학여행을 비롯한 경주여행은 신라시대 유적을 보러가는 길이기도 하다.
경주에 와 조선시대를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신라는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와 참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
그에 반해 조선시대는 멀지않은 과거다.
거기다 조선왕조는 500년 넘게 존속했다.
한번 눈을 크게 뜨고 보자.
경주에 신라유적이 많은지 조선시대 유적이 많은지.
모르긴해도 조선시대 유적이 더 많을 것이다.
워낙 신라라는 이미지가 강해 조선이 가리워져 있을 뿐이다.
몇년전 페친 민병재 선생의 소개로 구입한 "또 다른 경주를 만나다(조철제 지음)"는
조선시대 경주에 관한 이야기다.
신라를 언급 안할 수 없지만 그래도 주된 이야기는 조선시대 경주다.
책을 샀지만 두꼭지 정도만 읽고 책장을 덮었다.
경주에 살고있지 않으니 아무래도 관심도가 떨어졌다.
이 책을 다시 꺼내든건 이달 중순 경주 여행을 다녀와서다.
일단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양동마을의 송첨고택의 서백당이란 편액이 눈에 익었다.
30분 정도 머물며 서백당 누마루에 앉아 물을 마시기도 했다.
서백당 맞은편 뜰엔 수령 500년이 넘는
향나무가 어마어마한 크기로 자라고 있었다.
양동마을은 경주손씨와 여강이씨의 집성촌이다.
송첨은 경주 손씨의 입향조인 손소가 세조 5년에 지은 집이다.
그 때 기념으로 심은 것이 바로 이 향나무다
손소의 외손으로 성리학을 집대성했다고 평가받는 중종 때의 명신 이언적이 태어난 집이기도 하다.
여성의 권리가 상대적으로 강했던 조선 초중기엔 친정집에서 아이를 낳는 일이 흔했다.
이언적의 경우도 그렇다.
여기까지다.
이언적에 대해선 더 이상 아는게 없다.
퇴계 이황의 스승으로 독락당을 지었다는 것 밖에..
돌아보니 안채는 후손들이 살고있어 들어갈 수 없었다.
책은 서너꼭지를 더 읽은 뒤 책장을 덮었다.
언제 시간을 내 양동마을을 다시 찾아야겠다.
이언적 생가인 독락당도 돌아봐야겠다.
수학여행을 포함해 경주를 가 본 것이 총 네차례.
이제야 경주를 조금 알 것 같다.
202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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