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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92년 여름. 수서 지구 노가다

by 만선생~ 2025. 6. 4.

군 제대한지 이듬해인 92년 여름.
친구들을 따라 수서지구에서 노가다를 했다.
지금은 수서역를 비롯 대단위 아파트와 빌딩이 빼곡이 들어서 있지만 당신엔
개발 초기로서 버스를 타려면 한 참 동안 걸어 나가야 하는 변두리였다.
일당 4만원.
나와 친구들은 아침 열덟시부터 저녁 여섯시까지 매일 같이 일했고 잠은
조립식으로 지은 기숙사에서 잤다.
집안 형편이 좋은 친구는 단 하나도 없었다.
다들 얼마라도 벌어서 생활비를 마련해야 했고 집안 살림을 도와야 했다.
노임은 조금 불합리했다
나처럼 일머리가 없어 꾸어다놓은 보리자루마냥 멀뚱히 서있기만 해도 4만원이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일을 알아서  착착 잘 하는 사람도 4만원이었다.
분명 10만원어치의 일을 하는 것 같은데 4만원이라니.
미안했다.
그 미안한 마음을 크게 자극한 이는 나보다 한 살 어린 정용화란 친구였다.
군에서 제대한지 얼마 안 되었고 전문대를 졸업해 취업 준비 중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노가다는 잠깐 거쳐가는 일인데 참으로 열심이었다.
누구보다 먼저 나서 할 일을 하는 그래서 꽉막혀 있던
일도 그가 나서면 매듭이 풀리곤 했다.
무엇보다 인성이 좋았다.
일머리를 몰라 항상 엉거주춤 서있는 내게 핀잔 한 번 주는 법 없었으니.
그저 자기 할 일만 묵묵히 하는 사람 .
바로 그였다.
난 그 일을 채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일도 힘들고 적성에 도무지 맞지 않았다.
노가다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이 일은 내 일이 아니라 싶었다.
어쨌든 내가 일을 그만 둔 뒤에도 친구들은 한 동안
그 일을 했으니 그도 아마 마찬가지로 한동안 그 일을 했을 것이다.
이후로는 소식을 전혀 듣지 못했다.
그리고 몇 년 뒤 친구 결혼식에 갔다가 당시 현장에서
그 친구와 늘 농을 주고 받던 동갑내기 친구를 보았다.
나는 그이의 소식이 궁금해 정용화란 친구는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다.
죽었다고 했다.
너무 놀라 왜 죽었는지를 물어볼 수가 없었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 이른 죽음이었다.
서울의 변두리였던 수서지구는 노태우 정부 당시 한동안 언론에 오르내렸는데
바로 수서비리다.
6공 실세들이 수서지구개발을 통해 어마어마한 뒷돈을
받아 챙겼지만 사태는 유야무야 끝나고 말았다.
나와 친구들이 받은 하루 일당 4만원은 껌값도 될 수 없는
천문학 적인 금액.
슬프게도 그 돈을 잡수신 분들은 지금도 부와 권력을 누리며 잘 살고 있다.
이후 수서지구는 중산층의 주거 공간이 되었다.
혹 그 때 함께 일하던 친구들 가운데 중산층으로 살고 있는 이가 있을까?
없지 싶다.
다들 일용할 양식을 걱정하며 살아야 하는 바닥 인생이다.
정용화란 친구라면 혹 그 성실성으로 인해 중산층으로 살고 있을지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아니 그렇게 살아야 했다.
신이 있다면 말이다.
며칠 전 구의역에서 한 19살의 꽃다운 젊은이가 세상을 등졌을 때
수서지구에서 만난 친구들이 생각났던 건 없는 집 자식들에 대한 연민 때문이다.
오늘도 없는 집 자식들은 있는 집 자식들이 어학연수를 떠나거나 유학을 갈 때
위험이 도사린 공사장에 내몰린다.
당시 강원도에서 올라온 친구들이 있었다.
친구들 나이는 믿기지 않게도 열 여덟살이었다.
만화가가 꿈이었던 나는 언젠가 만화에 써먹을지
모르겠단 생각으로 공사장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몇 장 찍었고 강원도에서
올라온 친구와도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정용화 사진은 없지만 머릿 속엔 그의 모습이 또렷하다.
머릿속 이미지를 사진으로 인화할 수 없는 것이 아쉽다.
 
201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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