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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재벌집 청소 도우미

by 만선생~ 2023. 11. 30.
 
사귀었던 사람의 직업은 보험설계사다.
한 때는 돈벌이가 제법 되었다고 하는데 나를 만났을 무렵엔 돈벌이가 잘 안되었고
헤어진지 오래인 지금은 돈벌이가 더 안된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알바가 들어왔는데 가정집 청소 도우미다.
한다리 건너 아는 사람이 금요일과 일요인은 반드시 교회에 가야한다며 대타를 물색하던 중
그녀에게 연결된 것이다.
하루 여덟시간 근무에 일당은 13만원.
가정집이라해서 찾아가보니 한남동에 있는 재벌집이었다.
건너편은 삼성 이건희 집이고 뒷집은 농심 신모 집이라 한다.
자기도 잘 몰랐는데 기업 순위가 20위 안에 든다고 했다.
재벌은 고사하고 준재벌 역시 만나본 적 없는 나로선 재벌집이 궁금했다.
가장 먼저 물어본 것은 골동품과 미술품이 얼마나 많이 있느냐였다.
예상과 달리 전혀 없다고 했다.
가구들은 물론 식기까지도 모두 오래된 것이란다.
처음 집에 들어갔을 때 집이 꾀죄죄해 놀랐다고 한다.
이유는 전에 일하던 청소도우미가 청소를 대충했기 때문이라고.
손길 가는 곳만 대충 쓸고 닦은뒤 식사 도우미 아줌마와 수다를 떨다 퇴근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돈값을 하기 위해 손길이 안닿는 곳까지 구석구석 쓸고 닦았단다.
덕분에 집안이 환해졌다고 한다.
주인 할아버지는 자수성가한 이로서 나이 80이 넘었는데 부부가 모두 조용하다고 한다.
한번도 소리높여 말하는 걸 본적이 없다 했다.
하루 세끼 밥을 빠트리지 않고 챙겨 먹는다.
이들 부부는 영화감독인 아들이 있다.
영화가 흥행을 못해 돈벌이가 시원찮다.
하여 아들 부부에게. 성북동에 집을 한 채 사주었는데 시가 99억이란다.
그녀는 아들 내외집도 일주일에 두번 4시간씩 청소를 해주고 있단다.
회장집과 마찬가지로 집안이 수수하단다.
우리가 생각하는 재벌집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99억원짜리 집이란 사실엔 변함이 없지만...
그녀는 회장님이 어떻게 기업을 일구었는지 모른다.
정경유착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 길이 없다.
그저 집안 청소를 하며 본 것을 말했을 뿐이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적어도 사람을 대하는 것에 있어선 대한항공 조씨들이 보였던
행태와는 많이 다르다.
겸손함이 몸에 배어있다.
집안엔 사방에서 선물을 많이 보내오는데 집안 일 해주는 이들에게 자주 준다고 한다.
그녀는 통화 중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뭐냐고 물으니 회장집에서 준 감이라고 한다.
감이 아주 맛있다고 한다.
나는 그녀에게 한남동 재벌 회장집보다 그녀가
나고 자란 고택이 더 값어치 있는 집이라 말해주었다.
땅값은 한남동과 비교가 안되지만 역사성에선 비교불가다.
안동 도산십이곡에 있던 스물여덟칸 기와집.
거기다 누마루가 있는 세칸 짜리 정자가 있었다.
누마루에 올라 바라본 명호강은 얼마나 아름다웠을 것인가.
하지만 가문의 몰락과 함께 집도 방치되어 비가 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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