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 진주성 답사를 마친 뒤 찾은 곳은 괴산 충민사였다.
진주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충무공 김시민 장군을 모신 사당이다.
충민사는 본디 진주에 있었으나 무슨 이유로 조선말 훼철되면서
1970년대 후손들이 살고 있는 이곳에 새로이 사당을 세웠다고 한다.
박정희가 총칼로 지배하던 70년대 남한사회는 암흑기였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재야인사와 학생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고 전통문화를
말살했다.
건축분야에서 미적감각은 철저히 배제된 채 효율만이 강조되었다.
특히 전통양식의 건축은 나무대신 콘크리트로 대신하였다.
아산 현충사와 광화문은 이 시기 만들어진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언젠가 비오는 날 아산 현충사에 갔더니 충무공 이순신
장군 영정 뒤로 물이 질퍽하더라.
영정 그림 또한 친일화가의 그림으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충민사 또한 이시기 세워졌다면 콘크리트 골조를 썼을 것
같은데 다행히 아니었다.
나무로 대들보를 세우고 나무로 서까래를 이었다.
사당은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세였다.
뒤로는 나즈막한 언덕이 앞으로는 강이 흘러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나중 알아보니 강 이름이 괴산할 때의 괴자를 써 괴강槐江이라 하였다.
나는 충무공 김시민 장군 영정 앞에 머리를 숙이며 빌었다.
"진주성" 작업을 무사히 끝나게 해달라고.
장군의 보살핌일까?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지원사업에도 선정되어 동력을 얻게 되었다.
지금은 빡빡한 일정 속에서 작업 중이다.
계획대로라면 내년 1월 단행본이 나온다.
무사히 책이 나온다면 다시 한 번 이곳 충민사에 들러 장군께 인사를
드리려 한다.
202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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