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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작업/1592 진주성

<1592 진주성> 작가의 말을 쓰다

by 만선생~ 2025. 6. 29.
출판사에서 "진주성" 편집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아무리 늦어도 해가 가기 전 책이 나오겠지?
책이 나올 때마다 작가의 말을 쓰는데 늘 긴장이 된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
작가의
그린이 정용연
우여곡절 끝에 책을 내놓는다.
책이 좀 더 일찍 세상에 나왔으면 좋았으련만 하는 아쉬움과 이제라도 나왔으니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엇갈린다.
출판사로부터 전쟁사 시리즈의 하나로 진주성 전투를 제안 받았을 때 1년을 예상했다.
내가 스토리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리 군사들이 떼로 나와도 1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오산이었다.
계약서엔 200쪽 내외로 완결 짓는다며 사인을 했지만 작업을 하다 보니 자꾸만
욕심이 생겼다.
이런 장면이 있으면 리얼리티가 더 살겠다 싶어 장면을 추가하였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왜군들은 전국시대 전투에 앞서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에이~ 에이~ 오~오~오~"를
외쳤다.
모르면 몰랐지 알게 된 이상 반드시 이 장면을 넣어야했다.
군사들을 가르며 “에이~ 에이~”를 외치는 왜군 장수와 이에 화답하여 ‘오~오~오~“를
외치는 왜군 병사들.
그리하여 분량이 2쪽 더 늘어났다.
이 걸 그리기 위해 죽어난 건 말하나 마나다.
그렇게 안 해도 되는 고생을 하였다.
사실 지식을 단순하게 전달하는 게 아닌 한 진주성 전투를 200쪽 내외로 담아내는 건
무리였다.
그만큼 전쟁은 격렬하고 참혹했다.
내게 진주성은 논개로 기억되었다.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몸을 던진 여인.
2009년 동료작가들과 남해여행을 하며 진주성을 찾았었다.
촉석루 아래 논개가 왜장의 몸을 끌어안고 강물에 몸을 던졌던 의암(義菴)은 428년 전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강물은 깊고 깊어 누구라도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할 듯했다.
의암에 서있던 나는 알 수 없었다.
훗날 진주성 전투를 그리게 되리란 걸.
진주성 전투는 임진왜란을 다룬 TV 드라마에서 몇 차례 다루었다.
모두 7년 전쟁 기간 중 한 번 짚고 넘어가는 정도였다.
과문하여 모르겠으나 지금까지 진주성 전투만 따로 다룬 문화 콘텐츠를 보지 못하였다.
적어도 장편 만화로는 최초가 아닐까싶다.
본격적인 작업에 앞서 진주성 답사를 하였는데 성이 1차 진주성 전투 시기와는 많이
달라 혼란스러웠다.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시내를 다니며 확인을 해야 했다.
더불어 진주의 진산인 비봉산과 망루가 있는 선학산을 올랐다.
멀리 지리산과 진주시내를 끼고 도는 남강의 모습이 한눈에 바라다 보였다.
허물어져 사라진 옛 진주성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었다.
진주성 안엔 남도 해안가에서 자생하는 가시나무 숲이 울창했다.
안내문을 보니 나무가 곧고 단단하여 창으로 많이 만들었다고 한다.
현장 답사를 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귀한 정보다.
이를 만화 속에 넣은 건 불문가지다.
돌아보면 한 장면도 피해간 적이 없다.
백이면 백 천이면 천, 만화가들에겐 절망과도 같은 떼신(scene)을 모두 그렸다.
왜장들 갑옷과 투구 그리고 회의 장면은 넘을 수 없는 벽과 같았다.
그럼에도 한계를 시험하듯 지우개질을 반복하며 그리고 또 그렸다.
원래 손이 느린데다 장면 연출을 더하다보니 시간은 작업기간은 예상보다 6개월을 넘어섰고
분량 또한 늘어나게 되었다.
1차 진주성 전투하면 떠오르는 것이 진주 목사 김시민이다.
나는 김시민을 최대한 멋있게 그리려 노력하였다.
그는 영웅이었다.
압도적인 전력 차가 남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는 준비된 사람이었다.
진주성 전투 이전, 왜군에게 빼앗겼던 사천, 고성, 창원 등 여러 성을 되찾았다.
1차 진주성 전투 결과 왜군의 전라도 진격은 좌절되었다.
바다에선 이순신, 원균, 이억기 함대에 막히고 육지에선 이치와 웅치에 이어 진주성을
넘지 못했다.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보급에 막대한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곡창으로 조선을 먹여 살리던 전라도는 그렇게 무사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김시민 한 사람 힘으로 진주성을 지킨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민초들이 돌을 나르고 물을 끓였다.
창과 화살을 만들었다.
전투능력이 없는 늙은이는 낡은 군복을 입고 적에게 군사가 많아보이도록 하였다
농사를 짓던 장정은 낫으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왜군의 손을 잘랐다.
조선의 주력 화기인 승자총통은 조준사격이 불가능함에도 적에게 치명적이었다.
수많은 탄환이 일시에 날아드니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승자총통은 아군에게도 위협이었다.
탄환을 발사할 때마다 내뿜는 뜨거운 열기와 진동을 견디어야 했던 것이다.
성을 지키는 데에는 남녀노소가 없었다.
적에게 포로로 잡힌 한 어린아이는 목숨을 걸고 탈출하여 적의 거짓 작전을 알렸다.
모두가 주인공인 이유다.
이 점은 스토리를 쓴 권숯돌 작가와도 공감대를 이루어 이견이 없었다.
우리에겐 승리를 왜군에겐 처절한 패배를 안겨준 진주성 전투!
이는 공동체가 위기에 빠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여준 역사의 거울이다.
책이 나오기까지 여러 사람에게 도움을 받았다.
고향이 진주인 김순영 선생은 진주박물관에서 발행한 “임진왜란” 도감을 우편으로
보내주었고 출판인 마정훈 선생은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다양성만화지원사업에
선정될 수 있도록 애를 써주었다.
무엇보다 마음고생이 심했을 배성원 팀장께 감사를 드린다.
답사 마지막 날.
충무공 김시민 장군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괴산 충민사에 들러 인사를 드렸다.
"장군. 이번 작업이 무사히 끝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사당 가까이 상수리나무 숲을 지나 오른쪽 언덕에 올랐다.
은빛으로 굽이굽이 흐르는 괴강이 촉석루에서 본 진주 남강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웠다.
 
2023.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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