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수단일 뿐이예요. 라는 후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만화가에게 그림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수단일 뿐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그림이 없는 만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만화가에게 그림은 자신의 정체성이다.
그림을 보고 작가가 누구인지 안다.
정용연 그림을 보고 정용연이 그렸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림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수단일 뿐이라고 말한 후배는 사실 누구보다 그림을
열심히 그린다.
그림을 열심히 그릴수록 이야기가 잘 전달되기 때문이다.
내게 그림은 목적이자 수단이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그림을 그리지만 더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노력한다.
남들 보기에 별 것 아닌 한 컷도 사실은 분투를 거듭해 그린 것이다.
때때로 그림은 아무 것도 아님 것처럼 말하는 이들이 있다.
스토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그림의 가치를 깎아
내린다.
당신이 아니어도 그릴 사람은 얼마든지 있어.라는 태도다.
과연 그럴까?
아무리 좋은 스토리도 연출력과 그림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무덤덤한 이야기가 되고 만다.
스토리만 좋으면 배우의 연기가 형편없어도 상관없단 말인가?
감정이입이 안되는데...
감독의 연출력도 무의미하고 좋은 배경을 만들기 위해
세트장을 만들 필요도 없다.
만화는 이미지로 만들어가는 이야기다.
그림이 없는 만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스토리도 작화가 형편없으면 몰입이 안된다.
다만 그림이 전부는 아니란 거다.
그림에 너무 높은 가치를 둔 나머지 스토리를 놓쳐버리는 만화가들이 있다.
그림이 목적이고 이야기는 수단일 뿐인 만화!
당연 연출도 신경을 덜 쓰게 되니 몰입이 안된다.
그림은 좋은데 이야기가 빈약한 만화를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슬픈 감정에 빠져든다.
그림에 들인 공이 아까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나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림에 너무 치중하여 이야기를 놓치는 것은 아닌지.
그림과 이야기는 함께 가는 존재다.
내가 공들여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이야기를 좀 더 잘 전달하기 위해서다.
다만 한가지 맹점이 있다.
그림이 이야기를 전달하는 수단이라고만
생각했을 때 만화가의 그림 작업은 고단하기만 하다.
그림 그리는 재미를 느껴야 한다.
스토리를 쓰는데도 상당부문 시간을 쓰지만 압도적으로 긴 것은 그래도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다.
그 시간이 즐겁지 못하면 인생이 행복하지 못하다.
만화를 그리는 궁극적 목표는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그림을 이야기를 전달하는 수단으로만 여긴다면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없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수단이지만 수단으로만 머물지 않는 뭔가가 필요한 것이다.
2025.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