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소리
내 첫 책인 <<정가네소사>>에서 묘사했던 것처럼 우리집은 외딴집이었다.
마을과 외따로이 떨어져 사람구경이 힘들었다.
아이들과 놀고싶으면 한참을 걸어 나가야 했다.
당너머는 우리집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로 집이 열 채 정도 되었다.
당집이 어딘가에 있었을텐데 신작로가 나면서 사라져 버렸다.
이따금 신작로 위로 차가 달리면 먼지가 뿌옇게 일었고 길가는 사람은 꼼짝없이 먼지를
뒤집어 써야 했다.
국민학교 3학년 때다.
그날도 나는 학교 수업이 끝난 뒤 같은 반 친구인 성옥이와 집으로 항하였다.
"용연아 우리집으로 와서 놀자"
"그래?"
나는 곧장 이웃 마을인 당너머로 향하였다.
내친구 성옥이네 집은 마을에서 유일한 초가였다.
집도 아주 작아서 초가 삼칸이란 말이 딱 맞았다.
우리집과 마찬가지로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호롱불을 썼다.
남포등을 썼던 우리보다 더 가난한 느낌이었다.
성옥이네 아버지는 나이가 많았다.
머리는 빡빡인데 희었고 흰 저고리와 바지를 입었다.
어머니 역시 나이가 많았다.
머리는 드물게도 쪽을 지어 비녀를 꽂았다.
누나는 고등학생이었다.
부모님은 농사를 짓는대신 날품을 팔아 생계를 꾸려나갔던 것 같았다.
언제나 그렇듯 그날도 난 노는데 정신이 팔려 해가 지는줄도 몰랐다.
사위는 칠흑같이 어두워 집에 갈일이 깜깜하였다.
논둑길을 걷는건 그렇다치고 무덤들을 지나야하는게 고역이었다.
그 때 성옥이가 뜻밖의 제안을 했다.
"자고 가"
성옥이 아버님은 아들의 제안에 말없이 밥을 차려 주었고 우리는 언제인지 모르게 잠이 들었다.
밤엔 놀거리가 없으니 일찍 잠들었을 거다.
"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에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나는 잠결에 낯선 소리를 듣었다.
깜깜한 방안에서 언제 돌아오셨는지 성옥이 어머님이 주문같은 걸 끝도없이 외웠다.
소름이 돋았지만 나는 숨을죽인 채 계속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주문이 끝나자 성옥이 어머님은 성옥이 아버님께 자고있는 이 애가 누구냐고 물었다.
"외딴집 의사양반 아들이고만"
우리 아버지는 무면허 의사로 마을 사람들 모두 의사양반이라 불렸다.
날은 어느새 밝아 나는 성옥이 어머님을 보았다.
역시 쪽진머리였고 방엔 성경책이 한 권 놓여있었다.
아마도 임상리 교회에 새벽기도를 다녀오셨나보다.
일요일 아침마다 듣곤하던 교회 종소리.
그러나 기도소리를 직접 듣는 건 처음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크게 걱정할줄 알았던 부모님은 담담하였다.
이웃마을 어느집에서 자고 오겠거니 생각하셨나보다.
지금같으면 난리가 날일이지만 그때는 그랬다.
전기도 들어오지않고 전화도 없던 시절.
성옥이 어머님 기도소리는 40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은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다.
2024.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