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리뷰/소설 일반 도서

아내의 영전에

by 만선생~ 2025. 7. 26.

을유문화사서 나온 <<아름다운 우리 고전 수필>> 이란 책이 있다.
안타깝게도 여자가 쓴 글은 단 하나도 없는 지독한 성비 불균형의 책.
그만큼 여성이 문자로부터 소외돼 있었단 뜻이기도 하다.
다행히 지금은 여성들도 남성과 똑같이 글을 쓴다.
여자라 해서 글을 쓰지 못하게 하는 경우는 없다.
여성 작가와 남성 작가의 비율도 비슷한 것 같다.
조선시대를 무대로 작업을 하고 있는 나는 이따금
<<아름다운 우리 고전 수필>>이란 책을 꺼내 본다.
그리고 매번 사람의 감정이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큰 스트레스는 배우자를 잃는 것이란다.
그로 인한 상실감이 어마어마하다.
자식이 죽어도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슬픔을 느끼겠지만 이는 특별한 경우다.
의학이 발달한 현대에 이르러선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가는 일은 흔치 않다.
이인로 이규보 정약용 박지원 허균 김시습...
글로 이름을 남긴 위인들이다.
이 가운데 내 가슴을 가장 울리는 글은 김종직이 쓴 '아내의 영전에'란 글이다.
글을 읽을 때마다 아내에 대한 사랑을 절절하게 느낀다.
무엇보다 글이 참 아름답다.
검색을 하니 김종직은 일세를 풍미한 문장가라고 한다.
번역도 참 잘했단 생각이 든다.
글을 읽은뒤 이상하게 김현식이 부른 '사랑했어요'란 노래가 귀에 자꾸만 맴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아내의 영전에 제망처숙인문(祭亡妻淑人文)
김종직
삼가 제물을 갖추어 당신 영전에 고합니다.
우리가 백년을 함께하기를 기약했는데, 이제 겨우 서른 해. 그런데 당신은 영영
내 곁을 떠나려고 합니다.
무엇이 그리도 급하단 말입니까.
우리가 함게 보낸 지난날들을 생각하니 목이 메어 한 마디 말도 제대로 이를 수가 없습니다.
당신은 명문가에서 태어나 나 같은 보잘 것 없는 서생의 아내가 되었으나, 조금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 언제나 한결같이 어질고 너그럽고 또한 인자했습니다.
젊어서는 어머니를 공경하고 나이 들어서는 가족들의 화목을 위해서 더욱 힘썼으니,
돌아가신 어머님께도 늘 "우리 며느리만한 사람이 없느니라"하셨던 것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나의 누이들과도 사이가 좋아 서로 두둔했으며 동서끼리도 한 번 거스르는
일이 없었고, 고향의 일가 친척들에게도 덜하고 더함이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한결같이 어질게 대했지요.
당신은 이처럼 덕이 높았는데 명은 왜 그렇지 못했습니까.
내가 천성이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아 늘 양식이 떨어졌는데도, 당신은 불평
한 마디 없이 쓰라린 가난을 잘도 참아냈으며, 물욕에 마음을 빼앗기는 일 없이
거친 음식에 남루한 옷을 걸치고도 오히려 담담했습니다.
그러나 제사 때나 손님을 대접해야 할 때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음식은 결코 빠뜨리는 일이 없었지요.
변변찮은 재료라도 한 번 당신 손끝을 거치고 나면 모두가 맛있는 음식이 되던 것을....
그런 당신음 마치 옛날 양홍의 아내 맹광과도 같았고 시상의 적씨와도 같았지요.
그러기에 내가 당신에게 의지하는 바가 정말 컸었는데.....
벼슬에서 물러나거든 나물을 캐고 고기를 낚으면서 흰머리를 서로 마주대고
우리 함께 여생을 마치자고 하여, 이제 그 뜻이 거의 이루어지려고 하는 참인데.
아, 이 무슨 변괴인지 모르겠구려.
돌이켜 생각하면 당신은 이 세상에 와서 한 번도 좋은
시절을 보지 못하고 늘 고생만 하다가 떠난 것 같아서 마음이 더 아픕니다.
태어나 채 한돌도 채 못되어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니,
슬프게도 연로하신 외증조 내외분이 어린 당신을 맡아 기르셨다지요.
그 밖에도 결혼하기 전까지 여러 차례 의지할 곳을 잃었고 마지막으로 의지하던
외할머니마저 돌아가셨으니 어린나이에 그 슬픔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내 집에 와서도 좋은 일보다 궂은 일이 더 많았으니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당신은 두번이나 삼년상을 치렀고 불행한 나를 만나
두 딸과 다섯 아들을 모두 차례로 잃었으니 오장인들
어찌 성할 수 있었겠습니까.
병이 다시 도진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당신의 병은 산후에 생긴 것인데 가슴속에 뭉쳐 돌아다니던 풍사와 혈독은
10년동안 약으로 다스렸기에 나는 다 나은 줄로 알고 있았습니다.
하기야 가끔 도지긴 했지만 대단치 않아 시간이 지나면 나으려니 생각한 것인데,
그 것이 내 잘못이었습니다.
치료만 게을리 하지 않았던들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말입니다.
정말 당신을 볼 면목이 없습니다
아,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입니까.
장인께선 아직 정정하신데, 철철이 받들던 약주는 이제 누가 담그며, 아무것도
모르고 방에서 놀고 있는 저 철부지 어린 딸아이는 누가 돌본단 말입니까.
가엾게도 훗날 시집을 가게 되어도 짐을 꾸려줄 당신이 없구려.
당신의 여러 동생들은 모두 저렇듯 건강한데 유독 당신만 내 곁에 없으니 내가 수염을
그슬리면서 죽을 끓인들 누구를 위하여 맛을 보며, 마당에 가득한 노비들은 의지할
사람을 잃고 갈팡질팡하는데 누가 저들을 거느리며, 새로 지은 집에는 넓은 정원에
연못까지 있지만 다 소용이 없게 되었습니다.
함께 거닐 당신이 없습니다.
적막한 서편 침실은 당신이 거처하던 방이라 옷이며 이부자리며 빗 같은 것들을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놓아 두었습니다.
상식도 때를 거르지 않게 하였습니다. 그
런데 아이들을 많이 낳았어도 제대로 기르지 못해 정작 집상(執喪)할 아이가 없으니
그것이 또한 슬픕니다.
나는 병을 핑계삼아 벼슬을 내어놓고 한 해만이라도 복을 입으려고 하였는데,
임금께서 약을 내리시고 또 치료하게 하시니 은혜를 저버릴 수 없어 장차
서울로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당신의 장사에는 꼭 돌아올 것을 약속합니다.
이승과 저승이 결코 다르지 않으니 의당 당신도 나의 이런 슬픔을 짐작하리라 믿습니다.
당신도 알고 있는 미곡들판, 소나무와 노나무가 울창한 옥과(玉果)의
두 언덕 가운데다 당신을 모셨습니다.
그리고 그 동쪽에는 당신 어머니와 우리 아이들 묘소도 있습니다.
당신의 유택은 섣달에 경영키로 했으니 그리 아시구려.
구천에서나마 가족들을 만나게 되면 그나마 조금은 위안이 되겠지요?
아, 간 사람이야 그렇다지만 살아 있는 이 사람은 누구를 의지해야할지,
술을 부어 이별을 고하려 하니 다시 목이 메입니다.

2023.7.26 

'책 리뷰 > 소설 일반 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룻밤만에 읽는 남북국사  (2) 2025.07.29
황석영 소설 장길산 인터뷰  (7) 2025.07.27
춘향전  (5) 2025.07.05
동물 농장에 이어 1984를 읽고 있다  (1) 2025.07.01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4) 2025.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