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무살 때 읽은 황석영 소설 <장길산>을 다시 읽고 있다.
무려 삼십 팔 년 만이다.
<장길산>을 읽은 이유는 스승인 백성민 선생이 <장길산>을
만화로 그리고 계셔서였다.
풀빛 출판사는 출판사 한쪽 사무실을 선생님께 작업실로 내주었다.
문하생이었던 나는 선생님 작업실로 출퇴근을 했는데
덕분에 출판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충 알 수 있었다.
김명인 선생이 편집장으로 있던 시절이다.
당시엔 서른 살도 안 된 파릇파릇한 청년이었다.
사진을 보니 많이 늙으셨더라.
나는 풀빛 출판사가 있던 아현동 작업실에서 군 입대 전까지 있었다.
1권 말부터 2권부터 5권을 그릴 때까지다.
선생의 그림은 개성이 강해 팀 작업과 어울리지 않았다.
작품에 참여할 필력도 갖추지 못했다.
기껏 원고를 송곳으로 뚫어 박스를 치고 펜으로 칸(와꾸)를
치는 정도였다.
다음으로는 x표를 해놓은 곳에 먹칠을 했다.
단순 작업으로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스크린톤을 붙이는 것도 나의 임무였다.
하지만 스크린톤 사용이 많지 않은 원고라 선생의 시간을
많이 세이브 해 드리진 못했다.
마지막 작업은 칸 밖으로 벗어난 펜 선이나 먹물 자국을 화이트
수정액으로 지우는 것이었다.
역시 만화와 상관없는 사람도 할 수 있는 정말이지 단순 작업이었다.
그리고 가끔 효과음을 썼는데 이 때 쓰던 효과음을 나는
지금도 쓰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은 시간이 그리 많이 걸지 않았다.
나머지는 오로지 내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을 효과적으로 잘 쓰진 못했다.
그림 연습을 조금 하고 책을 조금 읽고... 그러다 하루가
훌쩍 가버리곤 하였다.
선생에게 내가 가장 유용할 때는 커피 심부름이었던 것 같다.
선생이 '용연아 커피' 라고 말씀 하시면 나는 곧 믹스 커피를 타드렸다.
처음엔 커피를 타 드릴 때마다 커피 잔을 씻다가 선생께서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해 같은 커피 잔으로 계속 타드렸다.
선생은 골초였다.
하루에 최소 두 갑은 피셨던 것 같다.
작업하시는 내내 담배 연기가 피어올랐다.
손가락 끝에서 타던 담배 재가 원고지 위로 떨어질 때가 다반사였다.
백성민 선생에게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다.
최고의 필력을 지닌 만화가라는 수식어다.
나는 운이 좋게도 그 과정을 내내 지켜볼 수 있었다.
선생의 작업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담배 연기 속에서 너무나 멋진 원고가 거짓말처럼 탄생하는 것이었다.
고백하자면 오십대 후반에 이른 지금도 당시 선생의 필력은 따를 수 없다.
마흔 무렵에 그린 선생의 필력과 지금의 내 필력은 비교가 안된다.
그저 필력이 모자라면 모자란대로 나는 나대로 그릴 뿐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지금까지 내 원고를 보고 스승님을 입에
담는 사람은 없었다.
같은 시대 물일 뿐 서로 연상이 안된다.
그러나 선생의 영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어서 남들이 알아채지 못할 뿐 이런
부분을 영향 받았네 싶은 것들이 있다.
이야기가 옆으로 샜다.
아무튼 스무살 무렵 나는 스승님이 <만화 장길산>을 그리는 덕에 소설 <장길산>을 읽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읽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소설이다.
(눈이 안좋아 소설 읽는 걸 부담스러워 했다)
소설은 총 10권으로 출판사는 현암사였다.
지금 읽고 있는 소설은 개정판으로 창비에서 12권으로 묶어서 냈다.
소설은 정말 대단했다.
만화 작가라면 탐낼 만한 스토리다.
이야기가 후반으로 갈 수록 힘이 빠지는 게 아니라 용솟음 치는 느낌이었다.
이때 소설로 접한 미륵 신앙은 지금까지도 큰 감동으로 남아있다.
당시 황석영 선생은 몇 차례 작업실에 찾아왔고 내 그림을 보며 '훌륭한 만화가가
되어야지'란 말씀을 해주셨다.
당시 선생의 나이 마흔 다섯 무렵.
나는 선생이 입고 있는 고동색 재킷이 멋있어 보여 그 같은 옷을 사 입기도 했다.
물론 선생은 당시의 나를 기억하지 못하실 거다.
언젠가 다시 한 번 읽어야지 맘먹고 있던 소설 <장길산>.
당시 나는 묘사가 하염없이 긴 만연체 문장이 별로였다고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렇다.
묘사가 좀 장황하다.
어쩔 수 없는 옛날 작가구나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걸 다 알고 썼을까 싶은 대목이 참 많다.
특히 장삿꾼들 이야기가 그렇다.
마치 그 시대를 살아본 사람이 쓴 것 같다.
만연체 문장임에도 장길산은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을 잇는 한국 역사 소설의 최고봉이다.
한국일보에 연재를 시작할 당시 황석영 선생의 나이가 서른 둘.
파릇파릇한 젊은이다.
저토록 젊었던 사람이 이제 팔순을 넘긴 노인이라니 믿기지가 않는다.
스무 살의 내가 육십 가까운 나이가 되었다는 것 만큼이나.
사진은 한국일보에 연재 된 장길산 첫 회 원고.
두번째 세번째는 작업실 시절의 나.
황석영 선생이 입었던 고동색 재킷을 따라 입었다.
등을 보이고 사람은 또 다른 문하생이었던 백우근 형.
2025.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