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화성에 병점이란 곳이 있는데 우리말로 하면 떡전거리다.
지하철 1호선 병점역이 바로 그 곳이다.
떡전거리는 춘향전에도 나온다.
암행어사 이몽룡이 남원땅으로 가는 길목에 떡전거리가 있는 것이다.
떡전거리는 서울 청량리에도 있었다.
청량리 시장에서 내가 다니던 청량 고등학교 조금 못미친 곳이 떡전거리다.
하지만 도시 개발로 인해 떡전거리는 사라지고 없다.
조그만 팻말만 남아 떡을 팔던 곳임을 알려주고 있다.
나는 떡을 참 좋아한다.
어찌나 좋아하는지 내 손에 들려있는 떡은 게눈 감추듯 사라진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떡보다.
지금도 떡집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떡을 산다.
내 어린날 떡은 정말이지 생일날이나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다.
조선시대 사람들 역시 떡은 귀해서 아무 때나 먹을 순 없었다.
장날 떡전거리에나 가야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몽룡과 그 일행도 떡전거리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떡을사먹지 않았을까 싶다.
그랬던 떡이 지금은 다이어트와 성인병의 원흉이 되어 기피하는 음식이 되었다.
기호의 변화로 인해 떡보다 빵을 많이 사 먹는다.
며칠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장이신 조관제 선생님
초대로 이사장실을 갔는데 그 때 내놓은 음식 가운데 하나가 일본 떡이다.
포장지에 떡병자와 들입자 그리고 히라카나로 리자를 썼는데 어떻게 읽는지는 모르겠다.
토끼가 떡을 찧고 있는 그림도 이채롭다.
토씨가 계수나무 아래 떡을 찧는다는 전설은 우리 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도 있는 듯 하다.
포장지를 풀고 떡을 반으로 나누니 앙금이 눈에 들어온다.
팥이다.
내가 엄청 좋아하는 팥.
동짓날 먹는 팥죽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붕어빵에 들어간 팥도 그리 맛있을 수가 없다.
내겐 한가지 문화 충격이 있었는데 팥을 싫어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그럴수가 있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또한 엄연한 사실이었다.
팥을 일본말로는 앙꼬라고 한다.
뭔가 실속이 없을 때 앙꼬없는 찐빵이란 표현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생겨난 것이리라.
선생님께서 초대 손님들을 위해 마련한 일본 떡.
한입 베어무니 쫄깃하다.
앙금도 달고 맛있다.
너무나 맛있어 눈치없이 하나를 더 먹었다.
뿐만 아니다.
이사장실을 나오면서 하나를 더 가지고 나왔다.
사진은 이 때 가지고 나온 떡을 찍은 것이다.
떡 하나 주면 안잡아 먹지?
어릴 때 읽은 해와 오누이라는 옛날이야기 속의 호랑이는 욕심도 많다.
고개마다 나타나 떡을 다 빼앗아 먹은뒤 끝내는 사람까지 잡아 먹는다.
나 역시 욕심이 많다.
떡이 눈앞에 있으면 떡을 다 헤치울 것 같다.
그 옛날 한양 도성으로 가던 나뭇꾼이 살곶이 다리를 넘어 한 참을 가다 멈추어섰으니
바로 떡전 거리다.
내가 3년동안 다니던 학교 앞 거리.
"시루떡 한 조각만 주오. 아니 두 조각...
아.. 인절미도 몇 개 주시오.
그런데 얼마요?"
"닷푼요"
떡값을 낸 나뭇꾼은 아껴먹으려던 마음과는 달리 그 자리에서 게눈감추듯
떡을 다 먹고 말았다.
그러고도 모자라 두푼을 더 내고 백설기 한 덩이를 먹으니 그제서야 속이 든든하였다.
다만 아쉬운 건 한없이 가벼운 주머니.
그래도 나뭇짐을 다 팔면 며칠 양식을 살 수 있으니 바삐 걸음을 놀려야 했다.
도성으로 들어가는 동대문까지는 15리가 남았다.
2025.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