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글쓰기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숙제로 일기를 쓰게 했는데 뜻하지 않은 말씀을 하셨다.
반 아이들에게 일기는 정용연이처럼 써야 한다며 내가 쓴 일기를 읽으시는 것이었다.
나는 속마음이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워 하면서도 한 편으론 기분이 좋았다.
난생 처음으로 들어보는 칭찬이라 그랬다.
고등학교 땐 논문 시간이 있어 매주 1,000자 씩 한 편의 글을 써야했다.
주제가 주어지면 그에 맞는 글을 채워 넣어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어떻게든 1,000자를 채우려 애썼다.
논리에 맞는지 안맞는지는 다음이었다.
하루는 국어 선생님께서 반 아이들에게 내가 쓴 논문을 예시로 들며 비유는
이렇게 하는 것이라 말씀하셨다.
반아이들이 놀랍다는 뜻으로 와~ 하며 괴성을 질렀다.
글쓰기로 들은 두번 째 칭찬이었다.
고등학교 땐 드문 드문 일기를 썼다.
문장도 맘에 들지 않았지만 더 맘에 안드는 건 글씨였다.
괴발새발 써내려간 글씨가 정말이지 목불인견이었다.
그럼에도 내게 있었던 일을 기억 저편으로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비록 시덥잖을지라도 기록으로 남겨 먼훗날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치 치하, 안네란 이름의 어린 소녀가 쓴 <안네의 일기>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은 더 굳어갔다.
청량리 시장에 자리한 우리집은 참 좁았다.
형제들끼리 살을 맞대며 자야했다.
비밀을 간직할 수 있는 자기만의 공간이 없다.
그 것은 사고였다.
우연찮게 대학생이었던 큰형의 일기를 보게 된 것이다.
믿기 힘들게도 형 일기엔 내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형은 이렇게 적고 있었다.
우연잖게 내 일기를 보게 되었다며 내가 생각이 깊을 뿐 아니라 글을 잘쓴다고.
뜻하지 않은 칭찬에 기뻤고 한편으로는 부끄러웠다.
속마음이 들킨 것 같아.
만약 형 욕이라도 했으면 어쩔뻔 했는가!
훗날 형은 몇 권의 자기 저작물을 세상에 내 놓았다.
베스트셀러는 아니어도 출판사에 손해를 끼치지 않을만큼 책이 나갔다.
스물 한 살.
대구에 사는 어떤 여자아이와 편지를 주고 받았다.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그저 안부를 주고받을 뿐이었다.
그나마 어디선가 본 좋은 문장을 내게 적어보내는게
특기할만한 일이었다.
조병화 시인의 '남남'이나 정다운 스님의 '사랑학 개론'
그리고 정태춘이 부른 '시인의 마을' 가사 등이었다.
특히 나는 '시인의 마을'을 좋아해 이후 정태춘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가 되었다.
정태춘의 모든 노래를 다 좋아하지만 꼭 한곡만 꼽으라면 '시인의 마을'을 들겠다.
지금도 나는 '시인의 마을'을 들으면 가슴이 아련해지며 그 애를 생각하게 된다.
나와 달리 글씨가 단정했던 그 애.
그로부터 십여년이 흐른 어느날 기적과도 같이 그 애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그 애가 말했다.
내가 편지글을 잘 쓴다고.
그러면서 에세이를 쓰면 잘쓸 것 같다고 했다.
이후 나는 글을 잘쓰기 위해 더욱 노력했다.
글쓰기에 대한 특별한 비법이 있을까 하여 글쓰기에 관한 책을 닥치는대로 읽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특별한 비법은 없었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라는 너무나도 평이한
결론에 이르를 뿐이었다.
아무튼 지금도 대구는 지금도 가장 가고싶은 도시다.
그 애는 대구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도시에 살고 있지만 나는 대구가 그립다.
그 애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걸었던 거리를 다시 한 번
걸어보고 싶다.
세상은 넓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고수가 넘쳐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페북만해도 글 잘쓰는 이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많다.
아니게 아니라 글로 밥벌어먹고 사는 이들이 또아리 튼 곳이 이 곳 페북이다.
어떻게 하면 그 수많은 별들 가운데 빛을 발할 수 있을까?
쉽지는 않다.
부족해도 그 저 마음가는대로 써내려갈 뿐.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고 한다.
나는 누군가에게 들었던 작은 칭찬에 고무되었다.
그 결과 글쓰기 공포에 사로잡히지 않고 일상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된 것 같다.
대단한 작가가 돼있는 건 아니지만 나는 만족한다.
오늘도 스토리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있음에.
2025.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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