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 경양방죽
"윤상원 일기"엔 열사가 살던 당시대의 모습이 잘 드러나있다.
1967년 열사가 다니던 살레시오 고등학교 가까운 곳엔 태봉산이란 해발 50m쯤 되는 낮은 산이 있었다.
헌데 산은 도시계획에 의해 허물어질 예정이다.
그럼에도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다 쓰러져가는 집을 고치고 있다.
집에 대한 애착이다.
떠날 때 떠나더라도 살 때까진 잘 살아보자는 거다.
열고등학교 2학년생인 열사는 이들에게서 삶에 대한 의지를 읽었다.
결국 태봉산은 사라져버렸다.
그렇다면 그많은 흙은 어디로 갔을까?
경양방죽을 메우는데 들어갔다.
경양방죽이 뭐냐고?
조선초기 농수를 대기 위해 판 어마어마한 크기의 인공호수다.
호수 엔 주위로는 수없이 많은 아름드리 나무들이 숲을 이루었다고 한다.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 수많은 시인묵객이 호수를 찾았다고 한다.
돈푼 깨나 있다는 이들은 배를 띄우며 놀았다.
아버지 정재원을 따라 지방 관아에 머물던
정약용(당시 나이 18세)은 경양방죽 뚝길을 거닐며 시를 읊었다.
그런 경양방죽이거만 일제는 도시개발을 이유로 3분의 2를 메워버리고 만다.
그리고 해방이 된지 20년 뒤 역시 도시개발을 이유로 방죽을 아예 다 메워버렸다.
지금은 경양이란 지명 외에 어떤 흔적도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경양방죽이란 말은 가까이 있던 경양역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기차역이 아닌 말로 관리들을 실어나르던 역참이다.
일대 역들을 관장하는 큰 역이었다고 한다.
만약 경양방죽이 그대로 남아있다면 어땠을까?
시멘콘크리트 건물로 가득한 지금의 광주완 딴판이었을 것이다.
자연풍광이 살아있는 멋진도시가 되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윤상원 일기엔" 당시대는 물론 과거 역사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들이 많다.
군부독재와 맞서 싸우던 시위현장이라면 늘 울려 퍼지던 노래 '님을 위한 행진곡'!.
80년5월 .
시민군 대변인으로 공수부대와 맞서 싸우다 장렬히 산화한 윤상원 열사의 모습도 우릴
감동케 하지만 무려 14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써온 일기 또한 우릴 감동케 한다.
202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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