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숙주 생가
나주시 노안면 금안리에 있는 신숙주 생가.
여느 시골집과 다름이 없다.
이렇게 작은 집에서 태어났나?
안내문을 읽어보니 일곱살 때까지 살다 한양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고향에 대한 기억은 많지 않을 듯 하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나는 일곱살 이전의 기억이 전혀없다.
신숙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업적이 뛰어난 명재상 신숙주와 주군을 배신하고 영달을 취한 신숙주.
나는 후자에 방점을 찍는다.
당시 성리학적 윤리관 뿐 아니라 지금의 윤리관으로도 명백한 변절이다.
그래서 사림들은 쉬 상하는 나물에 숙주란 이름을 붙여 조롱했다.
지금도 마트에 가면 숙주나물을 살 수 있다.
신숙주가 쓴 "해동제국기"란 책을 사서 읽었다.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 다녀와 쓴 책으로 여기서 제국이란 여러나라를
일컫는 말이다.
중앙집권화가 되지 않아 각지에 있는 영주들을 나라로 인식했던 듯 하다.
특이하게도 구주(큐슈)에서 수천리 떨어져 있는 유구왕국까지 다루고 있다.
조선에선 임진왜란 이전까지 일본에 관한한 이 책을 절대적으로 의지했다.
그렇다면 100년이 넘는 시간동안 일본에 대한 책을 쓴이가 아무도 없단 말인가?
이웃 나라에 대한 정보 수집에 너무나 게을렀던 조선!
조선은 이후 혹독한 댓가를 치루는데 바로 1592년 4월에 발발한
임진왜란이다.
신숙주는 배신의 댓가로 죽을 때까지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았다.
신숙주의 묘는 내가 살고있는 의정부에 있어 한 번 가보았는데 왕릉이
부럽지 않았다.
아마도 후손들은 신숙주를 자랑스러워하는 듯 하다.
그러면서도 생가는 거의 방치되다시피 했다.
신숙주가 살아있을 때 지은 집은 아니지만 문을 열어볼 수도 없게하여
유감이었다.
2022.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