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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4 전라남도

화순 운주사

by 만선생~ 2025. 9. 15.

 
 
 
화순 운주사
스무살, 황석영 선생이 쓴 대하소설 장길산을 읽었다.
조선 숙종 때를 배경으로 한 열권짜리 소설은 내게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주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뜨거운 감정이 차올랐다.
황해도 구월산에서 활동한 광대패 출신 장길산에 대한 이야기인데 등장 인물들이 풀어내는 사연
또한 대단했다.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 속에 또 이야기가 있는 소설.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민중 혁명이다.
핍박받는 민중이 지배층인 조선왕조를 뒤엎는 것이다.
그리고 민중혁명을 뒷받침하는 사상으로 미륵신앙이 있었다.
먼훗날 도탄에 빠져있는 백성들을 구하러 오신다는 미륵 부처님.
백성들은 미륵부처에 의지하며 새세상을 꿈꾸었다.
그리고 미륵신앙의 중심에 화순 운주사가 있었다.
민중의 염원을 안으며 일으키려했지만 힘이 다하여 끝내 누워버린 와불...
나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운주사에 가보고 싶었다.
세월은 살같이 흘러 스무살 청년은 불혹의 나이가 되었다.
스물한살 때 처음 보았던 여자 아이도 불혹의 나이가 돼 있었다.
거의 십년만에 연락이 닿은 여자아이는 내게 어딜 가고 싶냐고 물었다.
나는 화순 운주사에 가고 싶다고 했다.
여자 아이는 장거리 운전을 하며 화순 운주사에 와주었다.
그렇게 한 사람의 아내이자 아이 엄마이기도 한 여자 아이와 천불천탑 운주사 경내를 돌았다.
소설 장길산에서 끝내 일으켜 세우지 못한 와불을 보았다.
폴더폰으로 와불 사진을 찍었다.
그 아이의 뒷모습을 찍었다.
헤어지는 길에 여자아이는 경내 기념품점에서 내게 108 염주와 손수건을 사주었다.
이후 여자아이를 본적이 없다.
전화번호가 있지만 굳이 연락을 하지 않는다.
나는 그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미륵을 찾아다녔다.
미륵 부처님을 뵈면 마음이 편하고 좋았다.
재작년 출간한 "친정가는길"엔 주인공인 함숙영이 의지하는 대상으로 미륵을 그렸다.
세상을 바꾸는 수단으로 홍경래의 난에 동참하는 대찬 그녀지만 아이의 죽음 앞에선 한없이
작고 여린 존재였다.
날마다 미륵 부처 앞에서 아이와의 인연이 후대에 이어지길 빌었다.
지천명의 나이가 된 이후 줄곧 화순 운주사에 가고 싶단 생각을 했다.
해상도 낮은 폴더폰 사진이 아닌 해상도 높은 카메라로 운주사를 담아내고 싶었다.
여자아이와 보았던 천개의 탑과 천개의 미륵부처를 다시 보고 싶었다.
그 소망을 이룬 지금은 마음이 여유롭다.
 
2022.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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