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최고의 벼슬은 각간이다.
숙적인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리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 김유신.
문무왕은 각간이란 이름이 부족했는지
각간앞에 대자를 붙여 대각간이라 부르게
한다.
막리지였던 을지문덕과 대로였던 연개소문에게 각각 대자를 더한 고구려의 예와 같다.
그럼에도 문무왕은 김유신에 대한 높임이 부족했는지 태자를 더해 태대각간으로
부르게한다.
김유신이 죽어서는 왕의 시호를 내리니
흥무대왕이다.
제후국체제에서 이런 예가 있는지 살펴봐야겠지만 김유신에 대한 문문왕의
태도는 참으로 지극하다.
신하가 나라를 뒤덮을만큼 공을 크게 세우면 임금은 경계한다.
백성의 신망을 등에 업고 자신을 내칠 수 있기 때문이다.
6국을 평정하는데 가장 큰공을 세운 진의 왕전은
주군인 영정이 자신을 의심할까 두려워 한낱 재물이나 탐내는 보잘것 없는 위인으로
위장했다.
만약 공을 과시했다면 왕전은 영정의 손에 죽었으리라.
임금은 공많은 신하를 시샘한다.
나라를 구하고서도 버림받은 이순신을 보라.
김유신정도의 실력이라면 왕의 자리를 넘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왕을 허수아비로 세운뒤 권력을 독차지할 수도 있었을 테다.
고구려의 연개소문이나 고려의 최충헌은 아들 대까지 권력을 독차지하며
나라를 쥐락펴락했다.
하지만 김유신은 군인의 의무만 다할 뿐 정치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문무왕은 김유신의 진심을 알았고 높일 수 있는 최대한으로 높였다.
가보면 알겠지만 김유신의 묘는 왕릉에 버금가거나 그 이상이다.
김춘추와 더불어 당을 불러들여 고구려와 백제를 무너뜨리는데 가장
큰역할을 했던 김유신.
덕분에 우리민족의 무대는 한반도 남부로 축소되었다.
지금과같은 국경이 만들어진 것은 세종 때에 이르러서다.
김유신에 대한 평이 박한 이유다.
그럼에도 김유신은 위인이다.
정치군인들로 나라가 어지러웠던 한국현대사를 생각하면 김유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조국장관을 낙마시키기 위해 난동을 부리고 있는 지금의 정치검찰들
역시 마찬가지다.
가장바쁜 때 이런 글이나 쓰고 있다니...
혼나야 해 ^^"
2019.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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