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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3 경상북도

구미 채미정

by 만선생~ 2026. 1. 9.

 

 

 

 

 

 

 
 
구미 채미정
92년 구미에 살던 어떤 아이와 금오산 아래 채미정에 왔었다.
나는 그 아이의 해맑은 미소가 좋았고 경상도 사투리가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그로부터 몇십년이 지난 나는 경상도 특히 대구 쪽 말소리를 좋아한다.
전국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말투다.
당시 나는 구미가 처음이었고 채미정에 대한 아무 정보도 없었다.
안내판이 있었는지도 기억에 없다.
다만 한가지 정자가 무척이나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기와지붕과 기둥 그리고 우물마루에서 시간의 깊이를 느꼈다.
고색창연함이란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걸거다.
하지만 사진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은 못했다.
인물이 아닌 배경에 필름값을 지불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후회가 되는 지점이다.
정자의 아름다움에 처음 눈을 뜬 그 날.
세월이 흘러 그 아이의 소식은 들을 수 없지만 정자를 다시 가보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다시 찾은 곳이 채미정이다.
채미정은 영조 44년에 야은 길재를 기리기 위해 사당과 함께 지은 정자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로 시작한 그 유명한 주인공이 야은 길재다.
그는 끝까지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켰다.
충과효는 성리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덕목이다.
성리학이 국가 지배 이데오르기인 조선왕조에선 이를 활용할 필요가 있었다.
비록 자신이 무너뜨린 왕조지만 조선은 정몽주를 비롯한 고려의 충신들을 불러들였다.
그렇게 길재는 조선 선비들에 의해 떠받들렸다.
채미란 말은 사마천 사기의 백이숙제 고사에서 따온 이름이다.
주나라 무왕의 신하가 되는 걸 거부하고 산속에
숨어 고사리를 캐먹다 굶어죽은 백이와 숙제.
이들은 충신의 표본이 되었다.
삼십여년만에 다시 찾은 정자!
나는 그 아이가 앉았던 우물마루에 앉아 기둥을 만지며 한동안 시간을 보냈다.
이어 사당을 돌아본 뒤 채미정 바로 옆에 있는 구인재도 돌아보았다.
구인재는 채미정과 달리 안내문이 없다.
검색을 해도 나오지 않는다.
언제 지었는지 알 수가 없다.
한가지 분명한 건 당시에도 이 건물이 있었다는 것이다.
삼십여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낡은 느낌이 없이 그대로 였다.
아는만큼 보이는 법이라고 했다.
그 땐 보이지 않던 하마비가 채미정 입구에 보였다.
누구라도 말에서 내려 걸으라는 그 하마비다.
검색해보니 조선시대 때부터 있었던 듯 하다.
더하여 채미정 뒤로 굴참나무 군락지가 보였다.
채미정 뒷 담장을 통해 굴참나무 군락지로 가 사진을 찍었다.
잎이 다 졌지만 대나무의 푸른잎과 어울려 보기가 좋았다.
 
2025.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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