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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역사

국민교육헌장

by 만선생~ 2026. 2. 1.

어린 시절 나에겐 공포가 있었다.
국민교육헌장을 외워야 한다는 것이다.
형들과 누나는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기 위해 진땀을 뺐다.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
이를 외우지 못하면 선생님께 매를 맞는다고 했다.
천만 다행이도 5학년이 되고 6학년이 되어서도 국민교육 헌장을 외우라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다만 교과서를 넘기면 그 첫 페이지에 있어 볼 때마다 주눅이 들었다.
과연 나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난 것일까?
공부는 싫고 노는게 좋은 평범하기 이를테 없는 소년일 뿐인데...
세월이 흘러 이제 젊은 세대는 국민교육헌장을 모른다.
이런 게 있었다고 말을 해주어야 안다.
그럼 누가 이 걸 썼을까?
박종홍이란 서울대 철학과 교수라고 한다.
박정희 옆에 딱 붙어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하던 이다.
국민교육헌장을 새로운 게 아니었다.
일제강점기 '교육칙어'라는 것을 본떠 만든 것이었다.
천황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이데오르기로서 기능했다.
어쩌면 박정희는 국민교육을헌장을 통해 충성스런 자신의 신민을 만들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그의 최종 목표는 종신 대통령이었으니.
아니 전제군주인 왕이 되는 것이었다.
국민교육헌장은 시대를 증거하기 위한 도구로 맞춤이다.
나는 이를 내가 쓰고 그린 <정가네소사>란 만화에 넣었다.
국민교육헌장을 외우지 못해 매타작 당하는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그 장면을 그렸던 게 2006년 무렵인데 20년이 지나 국민교육헌장을 다시 읽어 본다.
총 393字다.
이 긴 글을 외우라고?
우리는 아름다운 문장을 외우라고 권유 받는다.
이를테면 용비어천가나 한용운의 님의 침묵같은 시다.
불교의 정수인 반야심경도 좋다.
그런데 국민교육헌장은 참 못쓴 글이다.
일단 만연체에다 동어반복이 잇따른다.
강한 의미의 말들이 연달아 피로감을 느끼게 한다.
주어와 서술이 맞지 않는 비문도 여러 개다.
정말이지 엉터리 글이다.
이런 글을 어린 학생들에게 외우라고 하다니 고문도 이런 고문이 없다.
먼저 박정희와 박종홍에게 묻고 싶다.
그대들은 국민교육헌장을 외웠는지.
당연 외우지 못했을 거다.
아래는 그토록 내가 두려워 하던 국민교육헌장이다.
국민교육헌장!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 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기른다
공익과 질서를 앞세우며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고 경애와 신의에 뿌리박은
상부상조의 전통을 이어받아 명랑하고 따뜻한 협동 정신을 북돋운다
우리의 창의와 협력을 바탕으로 나라가 발전하며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스스로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 정신을 드높인다
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 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자유 세계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다
길이 후손에 물려 줄 영광된 통일 조국의 앞날을 내다보며 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국민으로서
민족의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자
 
1968년 12월 5일 대통령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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