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정 茅亭
어린시절 학교 수업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하랭이에 들르면 모정이 있었다.
마을 한 쪽에 세워져 있는 건물로 여기서 아이들과 꽃패놀이를 하였다.
서울말로는 딱지다.
마루는 나무였고 허리를 숙이면 마루밑을 지나갈 수 있었다.
지붕의 형태는 기억이 안난다.
기와였던 것도 같고 스레트였던 것도 같다.
내가 태어난 마을 수하리에도 모정이 있었다.
지붕은 스레트였다.
여름날 아이들과 함께 마루에 올라 놀았다.
아쉽게도 마을이 집과 떨어져 있어 모정에 갈 기회가 별로 없었다.
모정과 정자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정자는 양반들의 놀이 공간이고 모정은 농민들의 휴식 공간이다.
정자는 경치 좋은 곳에 세워져 있고 모정은 마을이나 논 한가운데 세워져 있다.
건물의 격부터 다르다.
새마을 운동 이전, 모정의 지붕은 초가였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모정에 모여 마을 일을 논한다.
여름엔 더위를 피해 낮잠을 자거나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모정은 사방이 뻥 뚫려있는 구조다.
물레방아와 같이 남녀가 만날 일이 없다.
로맨틱한 장소는 아니다.
특이하게도 모정은 전라도에 집중돼 있다.
다른 지역은 없다고 한다.
전국 어딜 가든 정자는 손쉽게 볼 수 있다.
경치좋은 곳엔 어김없이 있는게 정자다.
하지만 전라도가 아닌 곳에서 모정을 본 기억이 없다.
제사를 지내는 것 외엔 전통과는 먼 삶을 살았다.
동짓날 팥죽을 먹고 정월대보름 부럼을 먹는게 전부인데 혼자사는 까닭에 지금은 그마저도
먹지않고 있다.
그나마 열두살 이전 시골에 살아 모정에 대한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을 뿐이다.
마침 주강현 선생의 책 <<우리문화의 수수께끼>> '모정과 누정' 꼭지를 읽고
생각나 써봤다.
2025.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