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라디보스톡을 일컬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말은 '극동의 부동항'
그리고 '가장 가까운 유럽'이다.
먼저 극동이란 표현이 맞을까?
극동이란 서구 중심의 시각에서 바라본 표현이 분명하다.
영국을 극서라고 하진 않으니.
그렇다고 유라시아대륙의 동쪽 끝이란 것도 틀리진 않다.
우리나라를 극동이라 하면 유감이지만 자국의 영토를 극동이라 하는데
뭐라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가장 가까운 유럽은 맞을까?
엄밀히 말하면 블라디보스톡은 아시아다.
그럼에도 가장 가까운 유럽이라 불리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러시아가 연해주에 진출한 것은 19세기 중후반으로 무역항을 얻기 위해
블라디보스톡을 개발했다.
제정시대 러시아는 문화적으로 프랑스와 아주 가까웠다고 한다.
교양인의 척도가 프랑스어를 얼마나 구사할 줄 아느냐 였고 일제 강점기
조선청년들이 일본으로 유학을 갔듯 러시아 청년학생들도 앞다투어
프랑스 유학을 떠났다.
그리하여 러시아는 어딜 가더라도 프랑스풍이 자리잡게 되었다.
패션은 말할 것도 없고 건축 양식도 프랑스 스타일을 따라했다.
블라디보스톡도 예외는 아니었다.
프랑스 건축 설계자가 프랑스 스타일로 건물을 지었다.
이주해온 사람들도 대부분 백인이어서 유럽의 여느 도시와 다를 바 없는
풍경을 연출하게 된 것이다.
블라디보스톡 거리를 걸을 때마다 나는 놀랐다.
고색창연한 19세기 건물이 거리마다 줄지어 늘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파리의 중심가를 걷는 듯 했다.
박물관 은행 음식점 관공서 등등 100년도 넘는 건물에 아직도 사람들이 일상의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왕궁을 제외하고 100년이 넘는 건물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서울의 거리와
너무나 달랐다.
식민지배와 전쟁 그리고 개발로 인해 사라진 수많은 전통 한옥들.
그리하여 서울은 시간의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 삭막한 도시가 되었다.
요즘 새로 건설되고 있는 대단위 아파트단지와 빌딩엔 시간의 깊이가 없다.
장인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다.
상상력이 자리할 여지가 없다.
어느 곳에 멈춰서도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이 들려올 것만 같은 도시 블라디보스톡.
다시가고 싶은 도시로 가슴에 남았다.
202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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