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양 만안교(萬安橋)
후배들과 삼성산에서 내려와 만안교를 찾았다.
1795년 정조의 명으로 세워진 다리다.
안내문에 따르면 3개월만에 공사가 끝났다고 한다.
아치형 무지개가 일곱개다.
다리가 크고 아름다워 조선시대엔 랜드마크 역할을 했을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니 돌들이 생각보다 크다.
이 무거운 돌을 어떻게 옮겼을까?
그만큼 많은 백성들이 동원되어 땀방울을 흘렸을테다.
노임은 받았을까?
영조 때 청계천 준설공사를 할 때는 임금을 받았다는데...
왕조 시대 백성들은 기본적으로 노역에 동원되어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해야만 했다.
다리 가까이엔 만안교비가 있어 만안교가 세워진 내력을 전한다.
보니 비문이 비바람에 닳아 잘 보이질 않았다.
아마 비각은 최근에 세운듯 하다.
만안교 자체도 1980년 도로 공사를 하면서 200m 쯤 옮겼다.
독립문과 마찬가지로 원래 있던 장소가 아니라 아쉽다.
도시개발로 인해 강제로 옮겨진 문화재들을 보노라면 마음이 짠하다.
안양은 근대 만들어진 도시다.
관아도 없고 향교도 없다.
산속에 있는 절을 빼곤 문화재랄게 없다.
그래서인지 만안교가 더 소중해보인다.
시간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다리.
다리 위에 놓여있는 화분은 치웠으면 좋겠다.
분위기를 깨도 너무나 깬다.
아래는 만안교비에 있는 판독문이다.
연도표기를 중국 연호가 아닌 上之라 쓰고 있어 눈길을 끈다.
상지는 우리 임금이 즉위한 해를 가리킨다.
상지 19년이니 정조 즉위 19년 되는 해 다리를 세운 것이다.
만안교비(萬安橋碑)
소재 : 경기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679번지
<판독문>
萬安橋碑 萬安橋碑 萬安橋碑頌并序 南充縣治南二十里有安養川即華城 輦路也惟我 聖上歲謁
園寢由是川以濟今春又奉 慈駕利涉川以是顯于世凡 幸行地方有川必有橋橋以木
駕過輒撤去冰之澌水之涉者 病焉前道臣臣徐龍輔以是橋之有所重也將以石代之未及就賤臣受
命來莅以孟秋啟基三 閱月而功告成延可十五丈袤可四丈高可三丈爲閘者五逮上
聞賞監董人及工匠有差 特 錫名曰萬安臣謹按王者就橋之安始於漢帝之長安而未聞奉
慈駕以行徒杠輿梁作於成周 而亦未聞代之以石傳之萬年也是橋也幸處華城 輦路 聖駕之一年一度
慈駕之十年一 度駕六龍和八鑾安而徃安而還萬萬年如一而推其餘迤及萬姓使遠近行李視以
康莊無揭厲 險阻之患而萬萬年戴 聖恩頌 慈德豈不誠盛矣乎哉橋之始也伐石于川之傍有石出焉可
以▨▨▨▨減其半神若有助其亦異矣臣拜手稽首記其事系之以頌曰 王幸于 園一度一歲
天臨虹橋歲以萬計 與福偕至其下有川 時奉 慈駕萬安萬年 恩及萬姓坦履齊歡 於干於萬安如砥磐
正憲大夫知中樞府事兼京畿觀察使兵馬水軍節度使水原府留守開城府留守江華 府留守廣州府留守
都巡察使 奎章閣檢校直提學臣徐有防謹撰 嘉善大夫戶曹叅判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副摠管臣
曹允亨謹書 學臣俞漢芝(謹書前面) 監董僉使 金天寶 營稗嘉善徐浹修 刻手邊李三興 治匠邊首鄭一成
五衛將張 烻 營校嘉善徐毅麟 石手邊首崔貴得 五衛將金大衍 營吏 李孝錫 朴福乭 五衛將金元爕
虹霓邊崔興瑞 上之十九年九月 日立
<해석문>
만안교비 만안교비송 -서문을 겸함- 남충현의 주치 남쪽 20리에 안양천이 있는데 바로 화성으로 가는 연로이다.
우리 성상께서 해마다 원침을 전알하려면 이 하천을 건너게 된다.
올 봄에도 자가를 모시고 이 내를 건넜으니 이로써 세상에 알려졌다.
무릇 행행지에는 하천이 있기 마련이고 하천마다 다리가 있기 마련인데 이들 다리는 나무로 놓아다가
왕의 행행이 지난 뒤에는 바로 철거하였다.
이로써 얼음 풀릴 때나 장마가 질 때에는 물을 건너는 사람들이 고생을 하였다.
전 도신 서용보가 이 다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돌로써 대체하여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다가 미천한
신이 명을 받고 취임하여 맹추에 이 일을 착수하여 3개월 만에 준공하니 길이는 15장이요,
폭은 4장이며, 높이는 3장이고, 갑문이 다섯 개이다.
임금께서도 이 일을 아시고는 감독하는 사람과 공장에게 차등있게 상을 내리고 특별히 ‘만안교’란 이름도 내리셨다.
신이 생각건대 왕자가 다리로 편안히 건너게 된 것은 한나라의 장안교에서 비롯하였지만 어머니를 모시고
다녔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으며, 도강과 여량은 성주 때에 이루어졌으나 돌로 만들어 만세에 전하였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
이 다리는 다행히도 화성 연로에 있으니 성가는 1년에 한 번, 자가는 1달에 한 번씩 육룡에 멍에를 메이고 팔란을
울리면서 편안히 지나갔다가 편안히 오기를 만년을 한결같이 할 수 있으며, 그 외에도 편의는 만백성에게까지
미쳐 원근의 짐 꾸러미들이 튼튼한 다리로 건너게 되어 이제는 옷을 걷어 올리거나 험한 길로 돌아서 갈 걱정이 없어졌다.
이로써 만년토록 성은을 입게 되고 자덕을 기리게 되었으니 어찌 참으로 성한 일이 아니겠는가?
공사를 처음 시작하였을 때 하천가에서 돌을 채벌하는데 과연 돌이 나와 경비를 반감할 수 있어 마치
신이 도운 것 같았으니 이 또한 기이한 일이다.
신은 배수계수하고 그 일을 기록한다. 송은 다음과 같다.
왕께서는 해마다 한번씩 원침에 행행하시오니 이 다리 건너시길 만 번을 하시옵소서.
복록과 함께 이르게 되리니 아래에는 내가 있습니다. 때로는 자가를 모시고 만년동안 만안하소서,
은혜가 백성에 미치니 마음 놓고 건넘에 환성 올리도다.
천년만년 편안하기 반석과 같도다. 정헌대부 지중추부사 겸 경기관찰사 병마수군절도사 수원부유수
개성부유수 강화부유수 광주부유수 도순찰사 규장각검교직제학 신 서유방 삼가 지음 가선대부 호조참판 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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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수변수 최귀득 박복돌 홍예변 최흥서 야장변수 정일성 상지 19년(정조 19, 1795년) 9월 일 세움
2026.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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