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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1 서울 경기도 (둘레길)

서울둘레길 100인 원정대 5.6코스 망우산에서 고덕산까지

by 만선생~ 2026. 5. 18.
서울둘레길 3회차 망우산에서 고덕산까지

 

어느덧 3회 차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집결지로 향하는 것은 여전히 힘들다.
가는 길이 멀어 책이라도 읽을까 싶어 책을 가져왔지만 책은 배낭 속에서 나올 줄을 모른다.
그냥 눈을 감고 가는 게 편하다.
힘들게 걸을테니 에너지를 최대한 아껴야 한다.
그렇다고 잠을 잘 수도 없다.
자칫 잠이 들어 차를 놓쳤다가는 지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집결지인 망원역에 도착하자 강사님들이 우리 대원들을 반긴다.
낯설었던 조원들과의 인사도 자연스럽다.
"안녕하세요~" 
서울 둘레길 100인 원정대는 열 개 조로 나뉘어 움직인다.
내가 속한 조는 5조다.
첫 날 맨 앞자리에 서있어 깃발을 들었던 관계로 조장이 돼 버렸다.
뜻하지 않게 감투를 쓰게 된 것이다.
어제 걸었던 길은 18.2km.
제법 길었다.
목적지인 고덕산 명일 공원에 이르자 다리가 무지 아팠다.
원정대를 이끌고 계신 대장님 말씀대로 집에 돌아와 찬물로 다리를 찜질하니 다리가 한결 가볍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으면 이렇게 가벼워지진 않았을 거다.
서울둘레길 원정대를 통해 유용한 생활 지식 하나를 이렇게 알아간다.
길이 길었던 만큼 구간이 여러 개다.
그런만큼 후기를 여러 개로 나누어 올린다.
1. 망우산 코스

공동묘지로 유명하다.
조선 시대엔 도성 안에 묘를 쓸 수 없었고 죽으면 도성 밖에 묻어야 했는데 대표적인 곳이 소의문 밖
애오개와 광희문 밖 망우리다.
죽은 시신은 4대문으로 나갈 수 없었고 4소문을 통해 나가야 했다.
광희문은 4소문 가운데 하나로 시체가 나간다 해서 시구문으로 불렸다.
시구문은 한양 도성 뿐 아니라 북한산성과 남한산성을 비롯 성이라면 반드시 하나는 있다.
언제부터인가 망우리 공동묘지는 망우 역사 문화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무수히 많은 역사적 인물이 이곳에 묻혔기 때문이다.
10년 전 쯤 나는 서울을 답사하며 이 곳을 돌아보았더랬다.
시인 박인환부터 이승만 정권으로부터 사법살인을 당한 조봉암까지 역사에 이름을 남긴 무수히 많은
이들의 묘가 가는 이의 발길을 붙잡았다.
어제도 그랬다.
이왕 왔으니 시간을 두고 찬찬히 돌아보면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일정이 빡빡해 가로질러 갈 수밖에 없었다.
혹 와보지 않은 이들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어 와봐도 좋을 것 같다.
어린 시절 망우리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은 공동묘지였다.
누군가에게 저주를 퍼부을 때 쓰는 말이 '너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히고 싶어?' 였다.
그런데 이렇게 나쁜 뜻으로 쓰이는 말들이 찾아보면 꽤 있다.
서울 난지도는 쓰레기장이었다.
서울 시민이 버리는 쓰레기는 모두 난지도로 향했다.
그래서 난지도는 더러움의 동의어로 쓰였다.
나는 당연 한자도 어지러울 亂자를 쓰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난지도는 한강에 있는 수많은 섬들 가운데 하나로 어지러울 난이 아닌 난초 난蘭 자를 쓰고 있었다.
난초가 자라는 아름다움 섬이 난지도 였던 것이다.
망우 역시 마찬가지다.
태조 이성계가 자신이 묻힐 묏자리(건원릉)를 돌아보고 환궁하던 중 이 곳 고개에 올라 이제 근심을
잊을만하다하여 망우(忘憂)라고 불렀단다.
2. 용마산 아차산 코스
산은 나무가지를 닮아 있다.
가지를 따라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줄기에 닿는다.
우리나라 산들도 마찬가지여서 능선을 따라 계속 가다보면 할아버지 산인 백두산에 닿는다.
개발로 인해 산이 깍이고 휴전선에 가로 막혀 가지 못할 뿐이다.
우리나라 산을 최초로 분류하고 정리한 이는 조선 후기 실학자 여암 신경준이다.
그는 산경도를 통해 우리나라 산들을 크게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과 그로부터
뻗어나간 정맥으로 나눴다.
용마산과 아차산은 수락지맥으로 수락지맥은 한북정맥에서 갈려 나왔고 한북정맥은
백두대간에서 갈려 나왔다.
그러니까 서울둘레길은 수락지맥을 따라 걷는 길이기도 하다.

 
용마산과 아차산은 고구려의 전진기지였다.
산에는 지금의 초소라 할 수 있는 보루들이 많이 발굴돼 복원 중이다.
고구려는 임진강에서 수심이 가장 낮은 연천의 호루고루성을 기점으로 남하를 시작했다.
내가 사는 의정부에 있는 산들에도 보루가 많다.
나는 틈틈히 동네 뒷산인 사패산을 오르는데 제 1보루와 제 2보루에 올라 시간을 보내곤 한다.
과장을 조금 더 보태자면 나는 천몇백년의 세월을 거슬러 고구려 병사들과 대화를 나눈다.
"어르신 고향이 어디신가요?"
"강서요. 5년 전 징집 돼 여기에 오게 됐지. "
"집이 그립겠군요?"
"그렇다마다. 집을 떠나올 때 아이가 한 살이었는데 지금은 많이 컷을 거요.
아내는 몸이 약했더라오.
그런 아내가 농사를 어찌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오.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아직 2년을 더 채워야 하오."

 
용마산과 아차산에서도 마찬가지다.
보루에 머물며 고구려 병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갈 길이 바쁘다.
3. 암사동 생태, 경관 보존 지역
한남정맥에서 갈려나온 수락지맥은 한강을 만나며 끝이 난다.
수락지맥의 끝인 아차산 아래는 큰 나루가 있는데 넓을 광廣자와 나루 진津 자를 써서 광진廣津이다.
우리말로는 너븐나루다.
조선시대 백성들은 광진보다 너븐나루를 입에 더 많이 올렸을 것이다.
마포보다 삼개나루를 입에 더 많이 올렸듯이.
한강은 강남과 강북을 가른다.
조선 시대엔 청계천이 한양 도성을 남북으로 갈랐지만 지금은 한강이 서울을 가른다.
100인 원정대는 스탬프 여권에 도장을 찍은 위 광진교를 넘으니 강동구 암사동이다.
인상적인 것은 한강의 암사동 생태 경관 보존 지역이었다.
끝없이 이어진 미루나무 길 옆으로 나있는 갈대 밭과 버드나무 숲...
인간의 간섭을 받지 않는 원시 자연의 모습이다.
나무 팻말엔 이렇게 써있었다.

"이곳은 삵. 새호리기. 참개구리가 사는 암사동 생태 경관보존 지역입니다.'
삵은 고양이과 동물로 보기가 참 어렵다.
강진의 병영교 아래에서 언뜻 본 것 같기도 하지만 삵인지는 모르겠다.
제대로 한 번 보고 싶다.
영상이 아닌 두 눈으로 직접.
김동인 소설 <붉은 산>의 주인공도 삵이었다.
새호리기는 처음 듣는다.
뭐지?
찾아보니 황조롱이보다 조금 작은 맹금류다.
멸종위기야생동식물 2급으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는다고 한다.

"고라니다."
갈대 숲 한 가운데는 고라니가 있었다.
가림막으로 보호를 받아서인지 사람을 보고도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고라니는 한 마리가 아닌 여러마리였다.
개체 수가 워낙 많아 골치라는 소릴 들었지만 아무튼 반가웠다.
4 고덕산

암사동은 선사유적지가 있는 곳이다.
전시관 안에 움집이 보였지만 역시 갈 길이 바쁜 관계로 지나친다.
마지막 코스는 고덕산이다.
산이라기보다 해발 86m의 완만한 구릉이다.
정상에 올라서면 한강이 내려다 보인다.
산들머리엔 화살나무를 많이 심었다.
화살을 닮아 기억하기가 쉽다.
산에 들어선 소나무 밤나무 신갈나무 상수리나무 귀룽나무 등이 자란다.
개나리 매화 진달래 생강나무 등 키작은 나무들도 꽃을 피웠다.
풀꽃은 아직 피질 않았다.
아마도 4회차인 다음 주면 제비꽃을 비롯한 풀꽃들이 피어나지 않을까 싶다.
참... 고인돌도 있었다.
2026. 3. 29 5조 조장 정용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