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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1 서울 경기도 (둘레길)

서울둘레길 100인 원정대 8차 후기 1

by 만선생~ 2026. 5. 28.
서울둘레길 100인 원정대 8차 후기 1 - 가양대교
서울둘레길 100인 원정대는 한 주 건너뛰어 가양역에서 출발한다.
가양동은 조선 시대 양천현이다.
진경산수화를 개척한 조선의 위대한 화가 겸재 정선이 5년 간 현령으로 근무한 곳이기도 하다.
현령의 품계는 종 5품, 한 고을 관장하는 수령이다.
흔히 사또라 불리는데 지금으로 치면 시장이나 군수 격이다.
목민관으로서 겸재 정선의 업적은 알려진 바가 없다.
하지만 양천 현령으로 근무하며 위대한 문화유산을 남겼으니 바로 '경교명습첩'이다.
배를 타고 다니며 한강 일대의 명승지를 무려 서른 세 폭씩이나 그렸다.
한 두 폭은 일시적 기분으로 그릴 수 있지만 서른 세 폭은 일시적 기분으로 그릴 수 없다.
작정하고 그린 것이다.
이름하여 겸재 정선 프로젝트다.
경교명습첩의 예술성은 말할 필요가 없다.
진경산수의 정수가 담겨있는 최고의 작품들이다.
하지만 경교명습첩은 또 다른 가치는 옛 한강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하는데 있다.
지금의 한강은 겸재가 살았을 당시와 전혀 다른 모습이다.
개발로 인해 물길이 바뀌고 강 폭도 비할 데 없이 넓어졌다.
저자도를 비롯 강에 떠다니던 섬들도 사라졌다.
1968년 폭파 돼 사라진 밤섬이 되살아난 건 그야말로 기적이다.
1. 가양대교
가양역 집결지를 벗어난 100인 원정대는 곧 한강 남부와 북부를 잇는 가양대교에 접어든다.
가양대교에서 바라본 풍경은 낯설다.
경교명승첩에 본 풍경과는 너무나 다르다.
강이라기보다는 거대한 호수다.
유람선을 띄우기 위해 강 하구에 보를 쌓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물은 흐르지 않고 고여있다.
고여있는 물은 썩기 마련이다.
한마디로 죽음의 강이다.
생물의 다양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환경에 적응한 일부 생물만 살아갈 뿐이다.
그럼에도 옛 모습이 완전 사라진 것은 아니다.
왼쪽으로는 양천관아의 진산인 궁산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외사산의 하나인 덕양산이 보인다.
행주산성으로 더 유명한 덕양산이다.
겸재는 행주산성 앞에서 어부들이 웅어 잡는 모습을 그렸다.
행호관어(杏湖觀漁)라는 그림이다.
웅어는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에 사는 물고기로
조선 시대엔 임금님 수랏상에 올라가는 귀한 음식이었다.
지금은 한강에서 아주 제한된 곳에서만 서식한단다.

2. 난지습지생태공원 메타세쿼이아길

가양대교를 건너면 난지도다.
7~80년대엔 쓰레기 매립지였고 지금은 노을공원과 하늘공원으로 거듭나 있다.
조선 시대엔 난초와 영지가 자라는 아름다운 섬이었다는
이야기를 지난 7회 차 후기에 썼었다.
고산자 김정호가 펴낸 대동여지도 경조오부 편에는 '中草'라고 표기돼 있다.
쓰레기로 산을 이루었던 난지도는 난지생태공원이란 이름으로 우리 100인 원정대를 반긴다.
생각보다 숲이 잘 조성돼 있어 걷기가 편하다.
노을공원 하단을 가로질러 얼마 쯤 걸었을까?
메타세쿼이아길이 나타난다.
너무나 평화로운 풍경.
지금까지 봤던 그 어떤 메타세쿼이아 길보다 아름다웠다.
같은 조 멤버로 마포구민이기도 한 김구성 선생 말로는 달리기의 성지라고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바닥도 아스팔트가 아닌 흙 길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길이 몇 백 미터를 걸어서야 끝이 났다.
메타세쿼이아는 공룡 시대에 살았던 화석 식물이다.
1940년대 북경 어딘가에서 발견돼 세계에 퍼진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은 나무에 대해 아는 체도 조금 하는 아마추어 숲해설가지만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나는 나무에
관심이 전혀 없는 생태맹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첫사랑을 십여년만에 만났는데 그 장소가 메타세쿼이아 나무 아래였다.
"이게 무슨 나무지?"
"메타세쿼이아"
"메타세쿼이아?"
그녀와 헤어지고 돌아온 나는 메타세쿼이아를 외우려 했지만 외워지지가 않았다.
"메타... 뭐지?"
검색을 해보고서야 확실히 알게 되었다.
아니 지금도 정확히 모른다.
메타가 가볍다는 뜻이고 세콰이아가 깃털인 줄 알았는데 오늘 검색하니 그게 아닌가보다.
어쨌거나 메타세쿼이아 잎은 새의 깃털을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