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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1 서울 경기도 (둘레길)

서울둘레길 100인 원정대 9차 후기

by 만선생~ 2026. 5. 28.
서울둘레길 100인 원정대 9차 후기
1. 게이트우드 할머니의 발자국
내가 서울둘레길을 걷고 있다고 하자 지인이 책을 한 권 추천해준다.
<<게이트우드 할머니의 발자국>>이란 책이다.
신문 지면에도 소개돼 인터넷 서점을 통해 주문했다.
게이트우드는 65세에 미국 동부 애팔래치아 트레일 코스를 여성 최초로 완주한 것으로 유명하다.
장장 3500km의 긴 여정이다.
그 긴 여정을 한 번도 아닌 세 번에 걸쳐 완주했다.
할머니가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를 시작한 것은 1955년.
한국에선 전쟁이 끝난 지 3년째 되는 해다.
한국은 전국토가 폐허가 되었고 거리는 굶주린 사람들로 넘쳐났다.
일자릴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먹고 살기에 급급했다
당연 트레일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같은 시기 미국은 어떤가?
소련과 함께 지구의 반을 나누며 최전성기를 달리고 있었다.
개개인의 삶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없이 풍요로웠다.
트레일 문화가 정착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애팔래치아 길을 걸었다.
하지만 여성, 그 것도 65세의 할머니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과연 할머니는 애팔래치아를 종주할 수 있을까?
할머니는 유명인이 되어 미국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었다.
신문 지상에 그 이름이 오르내렸다.
트레일 코스에서 우연이 기자를 만나것이 계기였다.
할머니는 기자의 취재에 응했고 기자는 이를 신문에 내보냈던 것이다.
이후 할머니가 트레일 코스를 완주하느냐는 미국 사람들에게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책의 저자는 당사자가 아닌 벤 몽고메리라는 언론인이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지 몇십년 뒤 할머니가 남긴 일기와 메모를 바탕으로 책을 썼다.
할머니는 일기를 썼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 생각은 없었던 듯 하다.
솔직히 책은 잘 읽히지 않았다.
우리와 너무나 멀리 떨어진 곳의 이야기라 그렇다.
애팔래치아의 식생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활자로 할머니의 기나긴 일정을 따라가다 보니 지친다.
120 여쪽을 읽다 책장을 덮었다.
작업도 해야 되고 다른 읽을 거리와 볼거리도 많았다.
책은 관심에서 멀어졌지만 그럼에도 끝은 아니었다.
마저 읽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서울둘레길 가는 길에 책을 배낭에 넣었다.
지하철에서 읽을 것이었다.
하지만 잠을 충분히 자지 않아서인지 책 볼 생각이 나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도 마챀가지다.
몸도 피곤한데다 사람도 많다.
결과적으로는 책은 배낭에서 나오지 않았다.
배낭의 무게만 더했을 뿐이다.
2. 북한산둘레길
후기를 쓰기에 앞서 폴더에 보관돼 있는 2012년 사진들을 본다.
북한산둘레길 사진들이다.
2012년 나는 혼자 북한산둘레길을 일주일에 걸쳐 완주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14년.
서울둘레길과 북한산둘레길을 함께 걷는다.
그러니까 구파발역에서 출발하는 서울둘레길 17코스에서 도봉산역에서 끝을 맺는 21코스는
북한산둘레길과 일치한다.
팻말도 북한산둘헤길과 서울둘레길이 함께 설치돼 있다.
3. 은평뉴타운
출발은 구파발역 1번 출구 바로 앞 만남의 광장이다.
시간에 맞춰 속속들이 모이는 대원들.
출발에 앞서 대장님의 당부 말씀이 있었다.
날씨가 더우니 물을 충분히 준비하라.
평창동 구간에선 아스팔트 길이 길다.
힘든 구간이다. 안전을 위해 통제에 따라달라. 등등
구파발은 조선 시대 파발이 지나던 곳이다.
며칠 전 나는 구파발에서 파발마와 만나는 장면을 그리기도 했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조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구파발이 몰라보게 변했다고.
상전벽해란다.
그도 그럴 것이 구파발 역 일대는 고층 빌딩들이 사방을 두르고 있다.
숨이 막힐 지경이다.
서울의 진산인 북한산이 보이지 않는다.
고층 빌딩을 벗어나 아파트 숲에 접어들자 자그마한 하천이 나타난다.
구파발천으로 진관동에서 발원, 창릉천과 합류 한 뒤 한강과 만난다.
은평뉴타운을 관통하며 흐르는 것이 구파발천이다.
검색을 해보니 1979년 복개되었다가 은평뉴타운 개발로 4.2km의 콘크리트를
걷어냈다고 한다.
서울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북한산.
북한산은 서울의 상징이다.
후지산이 일본을 상징하듯 북한산은 서울을 상징한다.
병자호란으로 청에 끌려가던 김상헌은 다음과 같이 읊었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소설 상록수의 저자인 심훈은 조국독립을 염원하며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북한산은 단순한 산이 아니다.
2천 년 서울의 역사를 오롯이 품고 있는 산이다.
경관 또한 매우 뛰어나 멀리 북한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해외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다.
인천공항에 내려 서울에 접어들 때 북한산이 보이면 그 때 비로소 한국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북한산은 더이상 김상헌과 심훈이 봤던 산이 아니다.
고층 빌딩과 성냥곽 같은 아파트에 가려 제대로 볼 수가 없다.
흔히 우리나라는 천연 자원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경관 자원이 넘쳐난다.
다시 찾고 싶은 도시는 역사유적과 함께 경관이 아름다운 곳이다.
그런면에서 서울은 경쟁력 있는 도시다.
아니 도시였다.
무분별한 개발은 2천 년 역사를 오롯이 품고 있는 북한산을 가렸다.
특히 은평뉴타운은 경관 파괴의 주범이다.
국립공원 바로 아래 고층 아파트를 지어선 안되었다.
세계 어느 나라도 국립공원에 난개발을 허용한 사례는 없을 것 같다.
그나마 복개된 하천을 걷어냈다는 게 다행이랄까?
구파발천을 따라 걷고있는 100인 원정대.
그 행렬 옆으로 노랑창포와 빨간토끼풀 같은 풀꽃들이 자라고 있었다.
4. 탕춘대 가는 길
땡볕이다.
대장님 말씀에 따르면 기온이 30도까지 올라간단다.
한여름 날씨다.
100인 원정대는 선림사 입구에서 쉬고 다시 길을 걸었다.
지루했던 아스팔트 길을 지나자 숲이다.
북한산둘레길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14년전 걸었던 그 길이다.
상수리 나무, 아까시 나무, 찔레나무, 소나무, 신갈나무 등등이 눈에 들어온다.
눈만 시원한게 아니라 눈도 시원하다.
숲은 바깥보다 기온이 4도 정도 낮다고 한다.
나뭇잎들이 볕을 가려주는데다 나뭇잎들이 물을 뿜어내기 때문이다.
나무는 물관을 통해 물을 끌어올린 뒤 나뭇잎 아랫 면을
통해 물을 뿜는데 이를 증산 작용이라 한다.
정확한 수치는 기억나지 않지만 오래 전 읽었던 책에 따르면 잘 자란 참나무 한 그루는
하루 수십리터의 물을 내 뿜는단다.
그야말로 천연 냉장고다.
숲에 들면 더위를 잊을 수 있는 이유다.
찔레나무는 꽃들이 하얗다.
향기도 좋다.
늦봄 이 나라 산천 어디에나 피어나는 꽃이다.
아카시아로 잘못 알혀진 아까시 나무도 향이 좋다.
아까시 나무를 지나면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꿀을 생산하는 밀원식물로 어릴 땐 그 꽃을 따먹기도 했었다.
불광사 아래 불광 공원에서100인 원정대는 잠시 쉰다.
물도 마시고 간식도 먹는다.
출발~
또다시 오르막길이다.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본다.
북한산 비봉 능선이 길게 펼쳐진다.
왼쪽엔 족두리봉이라고도 불리는 수리봉 그 옆으로 향로봉 그리고 진흥왕 순수비가 있는 비봉.
비봉 옆으론 문수봉이 또 옆으로는 보현봉이 있다.
광화문과 창덕궁 돈화문 앞에서면 바라다 보이는 그 봉우리다.
산성주능선 아래로는 가장높다.
북한산은 능선이 여럿이다.
북한산의 능선은 하나같이 아름답지만 그래도 단 하나를 꼽으라면 비봉능선을 꼽겠다.
비봉 능선에 올라 바라본 북한산 정상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직접 올라서봐야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비봉 능선을 오랫동안 마주하고 싶지만 갈 길이 멀다.
앞서간 대원들을 따라잡아야 한다.
우리가 향하는 곳은 탕춘대 암문.
점심을 탕춘대 암문 조금 못 미친 곳에서 먹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가져온 음식을 나누며 이야기를 나눈다.
이제 조원들은 단순한 관계가 아니다.
9차까지 그 긴 길을 함께 걸었던 이들이다.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
돌아보면 조원들 한 분 한 분 훌륭한 삶을 사시는 것 같다.
그래서 서울둘레길은 소중하다.
서울둘레길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이런 분들을 만날 수 있겠는가!
5. 탕춘대 암문
중요한 곳인데 너무 빨리 지나쳐 서운하다.
탕춘대 암문이 그렇다.
북한산성은 숙종 때 병자호란의 교훈으로 쌓은 성이다.
한양도성 바로 뒤 북한산에 남한산성보다 훨씬 크게 쌓았다.
외적이 쳐들어와도 몇 개월은 족히 버틸 수 있다.
이때 북한산성과 함께 쌓은 것이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잇는 탕춘대성이다.
대동여지도 경조오부 편에 보면 서성西城이 표기돼 있는데 서성은 탕춘대성의 다른 이름이다.
암문暗門도 서성과 함께 표기돼 있다.
유사시 적의 눈에 띄지 않게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든 문이 바로 암문이다.
그래서 문루가 없다.
100인 원정대는 중요한 곳에서 인증 사진을 남긴다.
우리 5조 역시 탕춘대성 암문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6.평창동 사모님
"사장님 평창동 사모님 전화세요."
"그래?"
재벌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 속 장면이다.
강남이 대한민국의 상위 5%를 차지한다면 평창동은 대한민국 상위 1%다.
재벌가 사모님들은 강남이 아닌 한남동과 평창동에 산다.
조선 시대 평창동은 성저십리로 한양 도성의 외곽이었다.
이 곳에 선혜청이 관리하는 평창平倉이라는 창고가 있었다.
경조오부에도 표기돼 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오래전 헤어진 여친이 보험설계사였다.
여친은 영업직과 잘 어울리지 않는 성격이다.
하지만 먹고사는 게 급하니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꾸역꾸역 영업을 해나갔지만 실적은 항상 그저그렇다.
그래서 알바를 하게 됐는데 가사도우미였다.
그 것도 이름을 대면 바로 알 수 있는 재벌집의 가사도우미다.
여친은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선임 가사도우미와의 갈등과 재벌집 사모님과 나누었던 대화들...
나는 여친의 이야기를 들으며 대한민국 상위 0.01%는 이렇게 사는구나 싶었다.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경험할 수 없는 세계다.
나는 이야기에 살을 붙여 만화 스토리를 쓰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여친은 일을 오래하지 못쇘다.
서너 달 하고는 그만 두었다.
스트레스가 너무나 큰 탓이다.
차라리 보험 일에 집중하는 게 낫다는 말을 하였다.
여친이 일하던 그 재벌집이 바로 평창동에 있었다.
서울둘레길과 북한산둘레길은 평창동 주택가를 가로질러 간다.
높디 놓은 담장들.
거리에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신 고급 차들만 보인다.
평창동은 북한산을 품고 있다.
천혜의 입지 조건이다..
사람 살기에 이만한 곳이 없을 것 같은데 왠지 차갑다.
정이 가지않는다.
높디높은 담장 안엔 우리완 전혀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을 것 같다.
그들 또한 죽으면 한 줌 흙으로 돌아가겠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은 그렇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조차도 부와 빈으로 나뉘어 있을 것같다.
아무리 돈이 많고 큰 권력을 가졌어도 인간은 약한 존대다.
생노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일까?
평창동엔 절이 많았다.
아마도 동네 사는 사람들이 와 복을 빌든 마음의 평안을 찾기 위해 기도를 할 터였다.
대장님께서 말씀하시길 연화정사에 가면 평창동이 한눈에 보인단다.
그랬다.
연화정사란 절에서 바라본 풍경은 시원하기 그지 없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부자들이 사는 곳이란 걸 실감했다.
재밌는게 북한산에 있는 여느 절들과 마찬가지로 절 이름이 삼각산연화정사三角山蓮華精舍였다.
북한산이라고 쓴 절은 단 한 군데도 보지 못했다.
모두 삼각산이었다.
이유가 뭘까?
궁금하다.
7. 마감
평창동 구간이 끝나고 길은 형제봉으로 이어진다.
또다시 접어든 숲.
아무리 잘사는 동네라도 숲만 못하다.
숲에 들어왔을 때 비로소 행복을 느낀다.
하늘 높이 뻗은 상수리나무는 볼 때마다 좋다.
눈이 절로 맑아진다.
죽으면 잘 자란 상수리나무 아래 뭍어달라 말하고 싶다.
숲은 아는만큼 보인다.
형제봉으로 가는 능선에 올라다가 다시 내려가는 길이었다.
때죽나무가 보였다.
하얀꽃이 마치 종처럼 매달려 있다.
꽃 모양이 쪽동백나무와 비슷한데 잎 모양은 확연히 다르다.
대원들에게 때죽나무 꽃이 피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여기 때죽나무가 있어요~'
하지만 저멀리 앞서 나가니 알려줄 수가 없다.
자벌레 역시 몇 명이나 눈여겨봤을지 모르겠다.
밤하늘의 별자리처럼 숲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신비로움 그 자체다.
9차 서울둘레길은 형제봉으로 가는 길목에서 마무리했다.
더위에 대원들도 힘들었겠지만 대장님과 강사님들 수고가 정말 많았다.
대원들 모두 사고없이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한 것은 대장님과 강사님들 덕분이다.
이 자리를 빌어 박수를 쳐드리고 싶다.
이렇게 긴 후기를 쓴 나에게도.
2026.5. 17 5조 조장 정용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