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둘레길 10차 후기 - 북한산 성북,강북코스
서울둘레길 156.5km 구간을 총 11차에 걸쳐 걷는데 이제 10차다.
마지막을 향해 간다.
23(토)일 이른 아침 길음역 3번 출구로 나와 7211번 버스를 타고 국민대학교 정문 앞에
내리자 빨간 조끼를 입은 강사분이 대원들을 맞는다.
강사분들은 대원들보다 한 시간 먼저 와계신다고 한다.
둘레길을 위해 수고를 많이 하시는구나 싶었다.
집결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강사분들이 중간 중간 서계셔 안내를 해주었다.
"반갑습니다"
언제나처럼 우리 대원들을 맞이하는 방재형 대장님과 강사님들.
출발 지점은 북한산 형제봉 가는길에 있는 공터였다.
안내표지판에는 명상구간길이라 쓰여 있다.
대장님의 안내말씀이 있고 이어 간단히 몸을 풀었다.
1. 명상구간길
길게 이어진 행렬.
길은 아름다웠다.
숲으로 둘러싸여 말 그대로 명상을 하기에 좋았다.
2012년 북한산 둘레길을 걸으며 걸었던 구간이지만 처음 걷는 듯 했다.
그만큼 세월이 흘렀다는 증거다.
이틀전이다.
후배들과 북한산비봉능선에 오르려 했는데 비가 내려 취소했다.
"비가 그쳤는데 지금이라도 갈 수 없나요?"
"안돼 길이 마사토라 미끄럽거든."
"마사토라니. 왠 일본말입니까?"
"마사토 몰라? 화강암이 풍화된게 마사토잖아."
갈마磨 모래사 沙 흙토 土
한국 산들은 대부분 화강암이고 화강암이 잘게 부서져 마사토가 된 거지.
그러니 자연 길이 미끄러울 수밖에.
한국물이 엄청 맑잖아. 그냥 마셔도 아무 탈이 없거든.
그 이유가 화강암이 잘게 부서져 생긴 모래 때문이야.
모래엔 모래와 모래 사이엔 공간이 있는데 이 걸 공극이라고 해.
그런데 이 공극이 물을 엄청 정화시켜준대.
강에 아무리 더러운 물을 쏟아부어도 모래가 있는 곳을 통과하면 거짓말처럼 깨끗해진다네.
정화 기능이 엄청나지.
그런데 4대강 사업을 한다면서 보를 만들고 모래까지 다 퍼올렸으니 완전 녹조라떼지.
미쳐도 단단히 미쳤어.
망국적인 토건 사업은 언제 끝을 맺나?"
마사토 얘기가 나왔다가 4대강 사업으로 새고 말았다.
언제나 이런 식이다.
나이 50이 넘도록 마사토란 말을 처음 듣는다는 후배들.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만큼 자연과 멀리 떨어진 삶을 살아온 거다.
하긴 나도 마사토가 일본말처럼 들리긴 한다.
마사코, 마사히로, 다테 마사무네, 가토 키요마사 등 마사가 들어간 이름이 흔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마사토를 검색해보니 아뿔사.
일본에서 온 말이 맞았다.
마사토라는 명칭은 일본어 真砂土('마사도' 또는 '마사츠치'로 발음함)에서 土를 한국 한자음으로
읽은 것으로,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등재되어 있지 않다.
<나무위키>
우리 언어 생활에 일제의 식민 잔재가 아직도 뿌리깊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각설하고
마사토 이야기를 꺼내든 것은 둘레길이 모래이기 때문이다.
북한산은 화강암이 산 전체를 뒤덮고 있다.
북한산 뿐 아니라 서울둘레길에 있는 산들이 모두 화강암 지대다.
그래서 쉬이 미끄러진다.
내리막길에선 강사님들이 하나같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미끄러지기 쉬우니 조심하세요."
하지만 이번 정릉길은 그리 미끄럽지 않았다.
높낮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평탄했다.
숲은 깊다.
은사시나무 아까시나무 소나무 상수리나무 신갈나무 같은
키큰 나무와 물푸레나무 팥배나무 단풍나무 등의 중간키 나무 그리고 산초나무 누리장나무
찔레나무 쥐똥나무 철쭉 진달래같은 키작은 나무들이 한데 어울려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낸다.
풀도 빠질 수 없다.
길섶엔 고들빼기 등과 같은 풀꽃들이 눈길을 붙잡는다.
정말이지 북한산은 서울의 허파로서 서울 시민의 휴식과 같은 산이다.
나는 산초나무 잎을 따서 조원들에게 잎을 비벼 냄새를 맡아보게 하였다.
향기로운 냄새에 모두들 신기해 하였다.
누리장 나무잎도 따서 맡게했다.
이름 그대로 누리끼리한 냄새가 난다.
나무를 기억하는 방법 중 하나는 이처럼 냄새를 맡아보는 거다.
어디서 들은 이야기인데 인간의 오감 중 냄새가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다고 한다.
어린 시절 건넛방에 살던 아줌마의 분냄새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어쩌다 그 분냄새를 맡으면 나는 여인이 그립다.
여인을 품에 안고 싶어진다.
분냄새만 기억에 강렬한 건 아니다.
비린내도 그렇다.
나는 2012년 출간한 <<정가네소사>>란 책에서 '생긋장사'란 에피소드를 그렸는데 첫문장을
"생긋장사 아줌마한테선 늘 비린내가 났다." 라고 썼다.
2. 청수장
서울둘레길의 아쉬운 부분은 완주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주위 풍경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거다.
주최측의 절대 과제는 원정대 대원 전원이 아무 사고없이 목적지에 도착하는 거다.
한 개인이 잠시 무리를 이탈할 수가 없다.
눈에 띄는 것이 있어도 그냥 지나쳐가야만 한다.
사진을 찍으려 해도 행렬에 밀려 뒤 따라간다.
변재수 강사님의 말씀대로 마음에 드는 구간이 있으면 다시 한 번 걸으며 제대로 보고 느껴야 한다.
정말 100% 공감이 가는 말이다.
대원들 대부분은 청수장을 무심코 지나쳤을테다.
청수장은 정릉계곡을 상징한다.
기록을 보니 신혼여행을 청수장으로 왔다고도 한다.
현재 북한산 정릉계곡을 가려면 청수장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청수장은 남아있지 않다.
청수장이 있던 자리엔 북한산 정릉탐방안내소가 들어서 있다.
정릉탐방안내소는 일본식 건물이다.
국립공원에 일본 건물이라니 말이 되나?
말이 된다.
왜냐면 청수장은 1905년 일본인이 지은 별장이기 때문이다.
청수장은 해방이 되고 전쟁이 끝난뒤에도 허물어지 않고 고급 휴양지로 쓰였다.
풀장도 있어 여름철 피서지로도 각광을 받았단다.
구글로 검색을 해보니 허물어지기 전 청수장 건물이 있다.
일본식 집이다.
식민지배의 아픔과는 별개로 이런 집은 그대로 보존해두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조선시대 건축엔 비할 바 아니지만 일제 강점기에 지은 건물들도 문화재로서 가치가 있다.
지하철 4호선 당고개역이 불암산역으로 바뀌었지만 당고개란 이름의 상호들이 남아있듯 청수장 역시
청수라는 이름의 상호들이 꽤 남아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건 청수탕이다.
목욕탕을 언제 갔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청수탕은 산행을 마친뒤 가봤으면 하는 곳이다.
같은 목욕탕이라도 이왕이면 역사가 오랜된 곳에서 이용을 하고 싶다.
3. 흰구름 구간
점심을 먹었던 장소가 기억이 안난다.
특별할 것 없는 공원이었고 조원들과 정을 나누며 맛있게 먹었다.
흰구름 구간 역시 명상길과 마찬가지로 걷기가 좋다.
편안함을 느낀다.
걷고 있는 내 둥뒤로 여성 조원들끼리 나누는 이야기 소리가 들려온다.
요새 뜨고 있는 TV드라마 얘기다.
sns에서도 화제인 TV드라마라 제목은 알고 있다.
후기도 제법 올라와 글도 한두꼭지 읽었다.
모두 여성들이 쓴 것이다.
드라마의 주 시청자가 여성이란 이야기다.
드라마 극본을 쓴 이는 누구일까?
부럽다.
만화를 그리는 입장에서 내 작품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르지 않는 것에 화도 난다.
그리고 장르의 파급력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만화와 드라마는 영향력에서 엄청 차이가 나는 것 같다.
TV드라마의 영향력을 따라갈 수가 없다.
그 것도 팀작업이 아닌 혼자 하는 작업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거기다 TV드라마는 공짜로 본다.
광고를 보는 댓가이기도 하지만 광고는 보든 안보든 상관이 없다.
광고가 뜨는 동안 다른 일을 해도 된다.
그에 반해 내 작품을 보려면 돈을 내고 책을 사서 봐야한다.
경쟁이 될 수가 없다.
드라마 제작회사에 판권을 팔면 되지 않냐고?
소수 잘나가는 작가들 이야기다.
입질조차 온 일이 없다.
마음을 비우고 펜선 하나라도 더 긋는게 내 할 일이다.
그 것 뿐이다.
흰구름길엔 전망대가 있어 북한산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진달래 능선 너머 세개의 꼭지점 중 하나인 만경대와 인수봉이 보인다.
다만 산정상인 백운대는 이들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인수봉 너머엔 탐방에 제한된 상장능선이 상장능선 뒤로
도봉산이 보인다.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산은 물을 가르지 않고 물은 산을 건너지 않는다.'
조선후기 실학자 여암 신경준이 한 말이다.
이 땅의 산하를 여행할 때 반드시 알아야 할 핵심 원리다.
북한산과 도봉산은 백두대간에서 갈라진 한남정맥으로 수락지맥과 마주한다.
그 사이를 흐르는 것이 중랑천이다.
아파트 숲에 가려 중랑천은 보이지 않지만 그 너머 수락산과 불암산이 우뚝 솟고 망우산
용마산 아차산이 그를 잇는다.
원정대가 걸었던 서울둘레길 1~5코스다.
전망대에 오르니 서울이 산중도시란 걸 다시 한번 실감한다.
세계 어느 나라도 수도에 이렇게 아름다운 산들로 포진해 있지는 않을 거다.
다만 그 아름다움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많을 뿐이다.
콤퓨터에 저장돼 있는 폴더를 보니 2012년에도 이곳에 올라 사진을 찎었었다.
4. 화계사
걷다보니 흰구름 구간이 끝나고 어느새 화계사 일주문이다.
화계사는 안산(무악산)의 봉원사와 더불어 서울에 있는 가장 아름다운 절이다.
이십년전 화계사를 찾은 뒤 잊고 지내다 올 초 흥선대원군 현판 글씨가 있다는 것을 알고
다시 찾았다.
세월과 함께 사람도 변한다.
이십년전에는 현판과 주련 글씨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부쩍 글씨에 관심이 많아지고 여행지 어딜 가나 현판 글씨를
눈여겨 보게 되었다.
<<현판기행>>이란 책도 사서 보고 현판 도록도 모았다.
이십년 세월이 흘러 다시 찾은 화계사.
화계사는 흥선대원군의 후원으로 증건한 절이다.
편액글씨를 누구한테 써달라 하겠는가?
추사 김정희의 제자로 난초 그림의 제 1인자이자 명필로 소문난 흥선대원군이다.
과연 흥선대원군은 천하명필이었다.
전국 곳곳 절이면 절 정자면 정자 집이면 집 흥선대원군의 현판 글씨가 걸려있다.
명필로 소문난 그이지만 최고권력자였기에 글씨를 써달라는 청이 빗발쳤을 것이다.
흥선대원군은 정무에 바쁜 사람이다.
그렇다고 청을 거절할 수는 없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대필작가다.
김응현이란 이가 난초 그림을 대신 그려주었다.
흥선대원군 난초 그림에 진품이 드문 까닭이다.
하지만 글씨는 장르의 특성상 본인이 다썼을 것 같다.
난초만큼 시간도 오래 안 걸린다.
대원들은 화계사 일주문 앞에서 스탬프 인증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음 코스를 위해 길을 나서는 대원들.
이번에는 비록 시간이 없어 돌아보지 못했지만 언제 화계사를 찾는 건 어떨까?
고즈넉한 분위기도 좋지만 흥선대원군의 현판 글씨가 있기에 더 가고 싶은 절이다.
5. 순례길
길은 이어진다.
'개발제한구역'이란 표지석도 보이고 '멧돼지 출현주의' 라고 쓰여 있는 현수막도 보인다.
국립공원이니 당연히 개발은 해서는 안되는 것이고 멧돼지는 최선의 답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자연이 인간만의 것은 아닐진대 철로된 울타리로 멧돼지의 이동을 막아야하는 걸까?
순례길엔 계곡이 많다.
맑은 물이 흐른다.
미류나무들이 보였다.
두께가 팔로 한 아름 이상인데다 키는 북한산 나무들 가운데 가장 크다.
미류나무는 외래 종이다.
최현택 강사님 말씀에 따르면 서양 나무가 처음 들어온 것이 1905년이라니 121살은
넘지 않았을테다.
미류나무는 성장속도가 빨라 일제강점기엔 신작로를 따라 참 많이 심었다.
해방 이전은 물론 이후 사진들을 보면 미류나무가 배경으로 항상 나온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형장으로 끌려가는 사형수들이 마지막으로 봤던 나무도 미류나무였다.
하지만 지금은 인기가 없어 심지를 않는다.
나무에겐 좀 미안한 말이지만 왠지 싸보인다.
상수리나무를 봤을 때완 느낌이 전혀 다르다.
순례길엔 이준열사와 손병희 선생을 비롯한 애국지사들의 묘가 많았다.
모르면 할 수 없지만 알고도 그냥 지나치려니 미안한
생각이 든다.
언제가 다시 이 길을 걸을 땐 한 분씩 찾아뵈며 인사를 드리고 싶다.
우리는 많은 걸 누리고 산다.
이렇게 서울둘레길을 걷고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엔 독립투사들이 나라를 되찾기 위해 피를 흘렸고 독재정권 아래에선 민주화를 위해 수많은
이들이 피를 흘렸기에 가능한 것이다.
서울둘레길에서 바라본 국립 4.19 민주 묘지 역시 우리의 마음을 숙연케 한다.
헌법은 이렇게 기술한다.
'우리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국립4.19 민주묘지 뒤를 돌아 도착한 곳은 솔밭공원.
소나무숲이 인상적인 곳이다.
선배 만화가인 이희재선생님 댁이 근처여서 몇 차례 오기도 했던...
선생님께서 그린 솔밭공원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신현택 강사님께서 우리 5조원들에게 물으셨다.
"히말리야보다 더 높은 산은 어디일까요? "
넌센스 퀴즈일텐데 생각이 나지 않아 되물었다.
"글쎄...뭔데요?"
"마누라 문턱요.
히말리야를 오를 땐 정말 겁이 하나도 안나는데 마누라 앞에만 서면 무섭거든요."
부인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는 말씀이었다.
나는 강사님께 말씀 드렸다.
"공처가... 아니 애처가세요."
10회차는 13.7km 걸었다.
산길이지만 가파르지 않아 생각보다 빨리 목적지인
우이동에 도착했다.
"플래카드에 길을 걸으며 생각했던 문구를 적으세요"
방재형 대장님 말씀에 대원들은 그동안 우리와 함께 했던 플래카드에 각자 문구
하나씩을 적었다.
나는 공개된 자리에 글을 남기는 걸 어려워한다.
머리를 싸안고 궁싯거리지만 마땅한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서 편하게 가기로 했다.
청량산을 사랑했던 퇴계 이황의 글을 쓰기로 한 것이다.
유산여독서 (遊山如讀書)
산을 유람하는 것은 책을 읽는 것과 같다.
언젠가 지리산 케이블카 반대 시위에 참여했었는데 그 때 만난 함태식 선생이
써주신 글이다.
2013년 세상을 떠난 함태식 선생은 지리산 호랑이로 불리며 지리산을
지키는데 앞장 서셨다.
플래카드에 문구를 적는 것으로 10회차도 끝이 났다.
내가 속한 5조는 처음으로 뒷풀이를 했다.
좋은 사람들과 기울이는 막걸리 몇 잔.
서울둘레길을 걷지 않았으면 만나지 못했을 인연들이다.
이런 기회를 갖게 해준 서울산악연맹에 감사를 드린다.
다음주 토요일은 서울둘레길 마지막 회차인 11회.
서울둘레길 완주 인증서를 받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아울러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께는 특별히 감사드리고 싶다.
5조 조장 정용연
'산 1 서울 경기도 (둘레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서울둘레길 100인 원정대> 6차 후기 (1) | 2026.05.29 |
|---|---|
| 서울둘레길 100인원정대> 7차 후기 - 안양천 코스 (0) | 2026.05.29 |
| 서울둘레길 9차 별도 후기 (0) | 2026.05.28 |
| 서울둘레길 100인 원정대 9차 후기 (0) | 2026.05.28 |
| 서울둘레길 100인 원정대 8차 후기 2 (0) | 2026.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