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둘레길 100인 원정대> 6차 후기
-관악산 삼성산 호암산 코스
한시 반 쯤 잠이 들어 다섯 시 반에 눈을 떴다.
더 잘까 했지만 다시 일어날 자신이 없어 느긋하게 나갈 준비를 한다.
약간의 시간적 여유.
문득 어제 마무리 짓지 못한 일이 생각 나 작업을 하였다.
그런데 아뿔싸.
펜선을 몇 번 긋지도 않았는데 시간이 훅하니 지나간다.
혹 지각을 할까 싶어 서둘러 작업실을 나섰다.
집결 장소인 사당역까지 가는데 지하철 안에 사람이 많다.
체력을 아껴야겠다는 생각으로 두리번거리며 자리를 찾는데 없다.
내내 서서 갈 판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갈아타기 두 정거장 전에 자리가 나서 앉았다.
사당역에 내리자 우리 대원들을 반겨주는 강사님들...
우리 대원들보다 무려 1시간 전에 나오신다는 말을 듣고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행사가 차질 없이 진행되는 것은 모두 센터장님을 비롯 대장님과 강사님들이 애써주신 덕이었다.
1. 관악산 코스
출발 지점은 관음사였다.
사실 관악산은 십여 차례 올라 새로울 것이 없는 산이었다.
삼성산과 호암산도 그렇다.
하지만 둘레길은 처음이다.
그동안 산행은 정상을 찎는 것이 주목적이었지만 이번엔 다르다.
서울을 품으며 가는 선으로 이어진 길이다.
봄은 일주일 사이 많은 변화를 만들어낸다.
진달래는 시들어 잎을 떨구고 철쭉이 꽃을 피웠다.
색이 연하여 조금 심심해보이는 꽃이 바로 철쭉이다.
진달래가 먹을 수 있는데 반해 철쭉은 독성이 있어 먹지 못한다.
대장님께선 철쭉을 연달래라고도 부른다 하셨다.
나는 당연 색이 연하여 그리 불리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진달래가 진 뒤 연달아 핀다고 하여 연달래였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땅 밑에 떨어진 참나무 잎이었다.
예닐곱 씩 되는 잎이 가지와 함께 떨어져 있다.
가지의 단면은 마치 톱으로 잘린 듯 매끈하다.
잎은 신갈나무를 비롯해 참나무가 자라는 곳이라면 어디든 떨어져 있다.
산림청 직원이 숲을 관리하기 위해 잘라낸 것일까?
아니다.
범인은 도토리거위벌레다.
도토리나 가지 속에 알을 낳은 뒤 주둥이로 가지를 잘라
떨어뜨리는 것이다.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미술 사학자 유홍준 선생의 책 <나의문화유산답사기>를 통해 널리 알려진 말이다.
그렇다.
아는 만큼 보인다.
나 또한 숲에 관심을 가지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다.
여느 등산객들처럼 무심히 지나쳐가는 한 명의 생태맹일 따름이었다.
감히 말하건대 생태맹은 겨우 면한 것 같다.
덕분에 숲에 들어서면 한 두 마디 아는 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공부는 복습이 중요하다.
반복해 입에 올리지 않으면 잊어버린다.
마찬가지로 나무 이름도 반복해 입에 올려야 기억을 한다.
그런 면에서 아는 체는 반복 학습이다.
어느 분에겐 나의 아는 체가 꼴사납게 느껴질 수도 있다.
만약 그런 분이 계시다면 인정 욕구에 목말라 하는 사람의 미성숙한 태도라 생각해주시길.
길은 계속 이어진다.
강감찬 사당이 있는 낙성대가 나오고 또 서울대학교 정문 앞을 지난다.
알려진대로 낙성대는 별이 떨어진 곳이다.
북두칠성의 네번째 별인 문곡성이 떨어진 뒤 한 아이가 태어나니 바로 강감찬이다.
강감찬은 문신으로 최고위직인 문하시중에 오른 인물이다.
하지만 대중은 문신이 아닌 무신으로 기억한다.
거란의 침공에 맞서 승리를 이끈 불세출의 명장이기도 해서다.
그래서일까?
그의 동상은 책을 든 문신이 아닌 무신의 모습을 하고 있다.
언젠가 일본 여자와 결혼을 한 동료 작가의 소개로 일본 여성을 만난 적 있는데 이 동상 아래에서 시진을 찍었더랬다.
그 때 바라본 동상은 참으로 힘찼다.
말 근육이 정말 잘 표현되었다.
이 번 역시 마찬가지다.
말 근육이 정말 힘차다.
말을 그릴 때마다 말 근육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데 조각가들은 어떻게 표현을 하는지 모르겠다.
점심은 관악산 코스가 끝나는 별빛내린천에서 먹었다.
검색을 해보니 도림천 상류로 관악산에서 발원하여 한강의 제 1 지류인 안양천으로 흐른다.
물소리가 참 좋다.
맑은 물에서만 사는 버들치가 헤엄쳐 다녔다.
계곡물이 흐르는 이 곳은 그야말로 천하의 명당이다.
그런 곳에서 조원들과 화기애애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으니 이보다 더 즐거울 수가 없다.
내친 김에 등산화를 벗고 계곡물에 발을 담갔다.
'別有天地非人間 별류천지비인간'
당나라 시인 이백이 시 산중문답(山中問答)의 마지막 구절이다.
인간 세계가 아닌 곳.
경치가 좋은 곳에 오면 버릇처럼 이 싯구절을 읊조리곤 한다.
얼마 전에는 <산중문답>이란 제뮥으로 16쪽짜리 만화를 그리기도 했었다.
2 삼성산 코스
삼성산 들머리에 접어들자 장승이 보였다.
한 둘이 아니라 길게 늘어서 있었다.
과거 마을 입구에 서있던 수호신.
액운을 쫓아야 했기에 얼굴은 험하기 이를 데 없었다.
지금 작업실을 함께 쓰는 후배네 집이 장승배기다.
그 곳은 과천현과 시흥현의 경계로 장승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 시대 사진 속엔 장승이 많이 나온다.
마을마다 있었기에 그럴 거다.
하지만 현재 남아있는 장승은 극히 적다.
새로 만든 장승들은 많다.
한데 보고 있으면 다들 어설프다.
흉내만 낸 것 같다.
그런데 여기 삼성산 들머리의 장승들은 조선 시대 사진 속의 장승을 보는 듯 했다.
누군지는 몰라도 해학적으로 참 잘 만든 것 같다.
과거의 재현에만 머무르는 게 아니라 현재적 관점으로 재해석해 만든 장승들도 좋았다.
하나의 가지에서 뻗은 연리지 장승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신갈나무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벚나무 국수나무 은사시나무
소나무 등으로 둘러싸인 길...
길은 계속 이어진다.
경사가 없이 완만해 걷기가 참 좋다.
흙도 부드럽다.
우리 100인 원정대는 메타세콰이아 숲에서 쉬었다.
(숲이름이 정확히 생각 안난다)
쉬면서 빙고 게임을 하고 후기를 열심히 올린 세 사람에겐 선물이 주어졌다.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나다.
선물은 허리에 매는 허리가방 즉 힙섹이다.
국내 여행도 여행이지만 해외여행 갈 때 꼭 필요한 게 이 가방이다.
잃어버려선 절대 안되는 물건들을 여기에 넣는데 특히 여권이 중요하다.
국제 미아가 될 수 있기에.
정말 하나 있었으면 했던 물건이었다.
특히 서울둘레길 마크가 찍혀 의미를 더한다.
바느질 상태도 좋아 보였다.
시장에서 파는 싸구려 물건이 아니다.
정말이지 나에겐 유용하면서도 기억에 남는 물건이 될 것 같다.
"5조 인원 확인요. 출발합니다"
이어지는 길.
간간이 보이는 복사꽃이 아름답다.
지금은 벚나무에 자리를 내줬지만 조선 시대엔 복사꽃이 봄 날의 아름다움을 상징했다.
도원결의, 무릉도원, 몽유도원도, 도화살 같은 말들은 복숭아꽃의 아름다움에서 비롯되었다,
문화재들도 연이어 나타난다.
선조 때 문신 윤길과 그 형제들의 묘가 인상적이다.
형제들 모두 문과에 급제해 입신양명을 했다고 한다.
또 1839년 기해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한 이들이 묻힌
삼성산 순교지도 가는 이의 발걸음을 붙잡게 한다.
조원 중 한 명은 천주교 신자인지 순교지 앞에서 성호를 그렸다.
3 호암산 코스
호암산은 해발 393m의 산이다.
산세가 호랑이를 닮아 그리불렸다는데 둘레길에서 정상이 보였다.
나는 20대 후반 호암산 아래 시흥 본동에서 일 년 여 간 선배네 집 반지하 방에 세 들어 살았다.
하지만 한 번도 호암산을 오른 적도 없었고 그런 산이 있는 줄도 몰랐다.
산은 내 인생에 아무런 관심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그저 오르기 힘든 곳으로만 인식되었다.
그런 내가 북한산을 80여 차례나 오르고 도봉산을 비롯해 오르지 않은 서울의 산이 하나도 없을 정도니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다.
호암산의 식생도 관악산, 삼성산과 다를 바 없다.
다만 전나무를 많이 심어 사람들이 나무 아래 쉬고 있는 것이 달랐다.
들으니 편백나무 다음으로 피톤치드가 많이 뿜어져 나오는 게 전나무라고 한다.
"이 참나무들을 보세요.
사람 키 높이 되는 곳에 상처가 나있죠.
도토리를 따기 위해 사람들이 돌로 내리쳐 이렇게 된 겁니다"
100인 원정대를 이끌고 계신 대장님께서 가던 길을
멈추고 말씀 하셨다.
상수리나무를 비롯해 사람 눈높이에 불룩하게 부풀어 있는 참나무들.
인가가 가까운 산엔 어김없이 이런 나무들이 많다.
과거 배고픈 시절 사람들은 도토리를 조금이라도 더 따기 위해 참나무들을 돌로 내리쳤다.
누군가 때리면 아프다.
나무도 마찬가지다.
상처가 남는다.
생장에 방해를 받을 수도 있다.
21세기 한국은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선진국이 되었다.
아닌 말로 먹고 살만해졌다.
과거에 도토리를 줍는 건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지만
현재는 다람쥐의 먹이를 빼앗는 몰지각한 사람이 되고 만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다람쥐.
다람쥐의 먹이를 뺏지 말자.
캣맘들이 산에까지 올라와 먹이를 주는 바람에 다람쥐 수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단다.
고양이가 다람쥐를 잡아 먹기 때문이다.
산 새들도 고양이들의 먹잇감이다.
단순히 배가 고파서 죽이는 게 아니라 놀이로서 새들을 죽인다고 한다.
북한산 도봉산 사패산 수락산 불암산 등등 산에는 고양이들 천지다.
언젠가 북한산 원효봉에 갔더니 사람의 손길이 잘 닿지 않는
성벽 안쪽에 고양이 사료가 수북했다.
캣맘들이 갖다 놓은 것이다.
지인 중 캣맘 활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다.
언젠가 내가 페이스북에 이런 점을 지적했더니 지인은 장문의 댓글을 달았다.
나더러 비정하단다.
하지만 나는 영문을 모르겠다.
고양이에 대한 선택적인 사랑을 이해할 수가 없다.
이 사건이 있은 뒤 그 이는 나와 절연하였다.
호암산의 식생은 지금까지 걸어온 여느 산들과 비슷하다.
다만 인위적으로 심은 전나무 숲이 볼만하다.
편백나무 다음으로 피톤치드를 많이 내뿜는 것이 전나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전나무 아래 누워 피톤치드욕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호랑이의 기세를 누르기 위해 세웠다는 호압사를 지나니 끝이 멀지 않다.
지하철 1호선 석수 역 쪽으로 내려와 걷기를 마무리 하였다.
총 11차 가운데 6차를 마무리 했으니 반을 넘어선 것이다.
다음 7차 코스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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