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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1 서울 경기도 (둘레길)

서울둘레길 100인원정대> 7차 후기 - 안양천 코스

by 만선생~ 2026. 5. 29.
서울둘레길 100인원정대> 7차 후기 - 안양천 코스
1. 간발의 차이
알파치노 주연의 <여인의 향기>라는 영화가 있다.
눈이 멀어가는 퇴역 군인 이야기다.
퇴역 군인에게 삶은 무미건조할 뿐이다.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지만 그마저도 실패로 돌아간다.
그러던 와중에 퇴역 군인은 파티장에서 젊고 아름다운 여인에게 춤을 청한다.
거절 당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여인은 퇴역 군인의 청에 응한다.
이들이 추는 춤은 탱고.
흘러 나오는 곡은 포르우나카베차다.
사실 영화를 본지 하도 오래되어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당시 라디오 프로에 나왔던 한 음악 평론가의 말은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포르우나카베차는 스페인어로 '간발의 차이'를 의미 한다고.
원래는 투우 경기에서 황소 머리 하나 차이 나는 걸 뜻하지만 우리말로 풀이하면 그렇단다.
간발의 차이.
살면서 우리는 종종 간발의 차이로 무언가를 놓치곤 한다.
5분만 일찍 사과했더라면 그녀의 마음이 돌아서지 않을 수 있었다거나 5분만 일찍 서둘렀다면
공모전 마감 시간을 지킬 수 있었던.
서울둘레길 가는 길도 그렇다.
행여 늦을새라 서둘러 승강장에 접어 들었으나 정말이지
간발의 차이로 열차를 놓치고 말았다.
3초만 더 일찍 나왔더라면...
후회해도 소용없다.
열차는 이미 플랫폼을 떠났고 다음 열차를 기다려야 한다.
안내판엔 다음 열차가 12분 뒤에 온다고 한다.
휴일이라 배차 시간이 더 긴 것 같다.
8시 50분 안양 석수역 도착.
집결지인 만안체육공원까지는 10분.
가까스로 지각을 면했다.
2. 안양천 가로수길
언제나처럼 원정 대장님 말씀 듣기와 몸 풀기로 둘레길 걷기가 시작된다.
길은 안양천을 따라 이어진다.
안양천은 탄천 중랑천과 더불어 한강의 3대 지류다.
발원지는 백운산 혹 청계산으로 꽤나 길다.
안양은 서울 바로 아래 있는 도시다.
서울둘레길이지만 어쩔 수 없이 그 경계를 지나게 된다.
안양이란 지명은 安養寺에서 비롯되었다.
안양은 불교 용어로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몸을 쉬게 하는 극락정토를 뜻한다고 한다.
영주 부석사에 가면 일주문을 지나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안양루다.
안양루에 올라 바라본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일망무제로 펼쳐진 산들을 바라보면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기름값과 톨비가 아깝지 않다.
내가 늘 가까이 두고 보는 것이 대동여지도다.
대동여지도는 내가 살고 있는 곳을 이해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텍스트다.
서울둘레길을 걸으면서도 당연 대동여지도를 본다.
시흥현 안에 안양安養이란 글씨가 또렷하다.
이야기는 19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12월 우리 집은 고향인 전북 김제를 떠나 안양에 자리를 잡았다.
안양에 직장을 다니는 이종 사촌 누나의 소개를 석수역 인근에 있는 세를 들어 살게 된 것이다.
단칸방으로 자고 일어나면 창문이 꽁꽁 얼어있었다.
낯선 도시.
열두살이었던 나와 열살이었던 동생은 조심스레 골목길을 걸었고 지금은 대단위 아파트가 들어선 공설 운동장에 나가 달리기를 하였다.
또 안양천변을 걸었다.
물은 깨끗하지 않았고 천 변엔 빈 병과 라면 봉지가 여기저기 나뒹굴었다.
안양 석수동에서 보낸 시간은 단 한 달.
우리 집은 서울로 올라왔다.
좌판 하나 깔 곳 없는 안양보다는 서울이 먹고살기에 유리했다.
내 삶의 근거지가 된 서울.
세월이 흘러 나는 자전거로 한강 일대를 달렸다.
한양 본류는 말할 것도 없이 중랑천 탄천 안양천 홍제천 창릉천 공릉천 청계천 양재천 아라뱃길을 모두 자전거로 돌았다.
안양천 합수부에서 출발해 잠실 탄천 합수부에서 끝나는
합류지점에서 끝을 맺는 한강 하트 코스도 완성했다.
자전거족이라면 반드시 달려야 하는 게 바로 한강 하트 코스였다.
일종의 통과의례다.
그 안양천을 서울둘레길 100인 원정대 일원으로 다시 걸으니 이 것도 운명인가 싶었다.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의해 이 길을 다시 걷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자전거 도로는 아니었다.
가로수 길이었다.
안양천변으로는 가로수길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언제 누가 조성했는지는 알 수 없다.
도시 계획의 일환으로 나무를 심었을 것이다.
길은 아름답다.
벚나무를 가장 많이 심었지만 은행나무도 많았다.
팥배나무와 이팝나무들도 종종 눈에 띄였다.
키 큰 나무들만 있는 게 아니다.
키 작은 영산홍이 만개하여 눈을 즐겁게 한다.
흰색과 붉은색 분홍색이 한데 어우러져 환타스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포장 도로가 아닌 흙 길이라는 것이었다.
부드럽기 짝이 없는 길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나무 그늘도 깊어 햇빛이 피부에 노출이 덜 되었다.
땡볕 아래를 걸을까 싶어 썬크림을 발랐건만 괜히 발랐나 싶기도 하다.
왼쪽으로는 안양천 오른쪽으로는 서울 가산디지털 단지다.
그 옛날 구로 공단이다.
공장이 즐비했던 곳은 이제 고층 빌딩이 가득한 곳으로 변모해 있었다.
상전벽해다.
길엔 나무들만 있는 게 아니다.
나무 아래엔 고들빼기를 비롯해 붉은 토끼풀같은 풀꽃들이 자란다.
이름을 알 수 없는 풀꽃들도 많다.
하나 하나 확인을 하고 싶지만 일행에 뒤떨어질까 싶어 그냥 지나쳐간다.
서울둘레길 걷기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소음이다.
가로수길 옆으로 도로가 나 있어 소음이 심했다.
차소리가 옆에서 말하는 이의 목소리를 집어삼켰다.
가뜩이나 한 쪽 귀가 멀어 사오정 소리를 듣는데 차소리가 심하니 먹통이 되었다.
"뭐라고?"
일일이 되묻기 민망해 알아듣지 못했음에도 알아들은 체를 한다.
눈이 멀은 것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 또한 고통이다.
나이를 먹어감에 신체적 능력이 떨어짐을 실감한다.
3. 점심 식사
아무리 부드러운 흙 길이라도 오랫동안 걸으면 다리가 아프다.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중간 중간 화장실도 갈 겸해서 한번 씩 쉬지만 어느덧 다리가 아프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다.
아무리 좋은 구경도 밥을 먹은 뒤다.
둘레길 걷기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은 점심이다.
같은 조원끼리 모여 각자가 싸온 도시락을 꺼내 먹는다.
이야기 꽃을 피우며 자신이 가져온 간식들을 내놓는다.
점심 식사가 끝난 뒤엔 원정 대장님의 실전 강의가 있었다.
산행 중 비상시 어떻게 대처하는지 배낭을 꺼내 보이며 말씀을 해주셨다.
도움이 된다.
4. 안양천 수변 생태길
총 18km 가운데 10km를 넘어선 시점 같다.
가로수 길이 끝나고 이젠 안양천 변을 걸었다.
자전거를 타고 달렸던 그 길이다.
땡볕이지만 이 길이야말로 진정한 둘레길이라 생각한다.
수변 생태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물을 참 좋아했다.
비가 온 뒤 고인 물웅덩이를 보면 걸음이 멈춰졌다.
그 작은 물웅덩이에도 물결은 일었고 나는 그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다.
기차를 타면 차창 밖으로 보이는 시냇물에 정신을 빼앗겼다.
나이를 먹어선 강들과 호수를 찾아다녔고 습지 머무르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누군가 이런 나를 두고 사주에 물의 기운이 강해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사주 팔자 이런 거 믿지 않는다.
하지만 내 안에 물에 끌리는 이유가 있을 것 같긴 하다.
조선 시대 사람들은 버드나무 구경을 즐겼다고 한다.
볼거리로 생각했다는 거다.
지금도 그렇다.
버드나무는 물을 좋아해 강가에 특히 많이 자란다.
나 역시 강가에 자라는 버드나무를 보면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만화 속에 버드나무를 즐겨 그린다.
유화 부인 (추모-주몽)의 어머니를 비롯해 버드나무와 관련한 역사 속 기록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무과 시험에 응시한 이순신이 말에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을 때 부목으로 사용한 것도 버드나무 가지다.
조선 시대 최하위 신분인 백정은 소만 잡는 게 아니었다.
버드나무 가지로 광주리를 만들어 내다 파니 이를 고리
백정이라 하였다.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우리 5조엔 숲해설가인 H작가가 하루 객원으로 참석해 조원들에게 중간 중간 숲해설을 해주었다.
워낙 해설을 재밌게 잘해 귀에 쏙쏙 박힌다.
양치질에 대해서도 한 마디 했는데 재밌다.
양치질의 어원은 양지(楊枝)로 버드나무 가지로 이를 닦았던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나무 가지를 가늘게 자르면 칫솔이 된다는 거다.
"버드나무로 만드는 물건이 또 하나 있는데 뭘까요?
이 것도 버들 양자와 가지 지 자를 써요."
순간 나는 일본 여자 이름 '양자'를 생각했다.
양자의 일본식 발음은 '요코'다.
"요지 (楊枝, よう)じ
"딩동댕~"
들으니 이쑤시개를 버드나무로 만든다고 한다.
식당에 가면 종종 "요지 주세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제로부터 해방이 된 지 80년이 지났음에도 그렇다.
그만큼 뿌리박힌 언어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버드나무가 있어 아름다운 안양천.
걷다 보니 어느새 한강 합수부다.
우리말로는 두물머리인데 합수부란 말을 더 많이 쓰이고 있다.
5. 한강
두물머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북한산이다.
서울의 진산으로 국립공원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
기네스북에도 올라 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산이 아름답기 이를 데 없다.
세계 어딜 가도 도심 한가운데 이렇게 아름다운 산은 없다고 한다.
인수 만경 백운. 이 세 개의 봉우리가 하늘을 떠 받들고 있다 해서 삼각산으로도 불린다.
서울둘레길 100인 원정대 마지막 코스도 북한산이다.
한 번도 북한산을 오르지 않았다는 같은 조원(mz세대)에게 말했다.
"한 번은 꼭 오르세요.
정말 아름다운 산입니다."
멀리 한강 너머 바라다보이는 것이 북한산이라면 가까이 보이는 것은 하늘공원과 노을 공원이다.
우리 세대에겐 난지도로 더 잘 알려져 있다.
7.80년대 서울 시민이 버리는 쓰레기는 죄다 난지도로 향했다.
쓰레기로 뒤덮여 악취가 나는 곳.
"이런 난지도 쓰레기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난지도는 어지러움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나는 당연 어지러울 亂자를 써서 난지도인 줄 알았다.
도시 개발의 역사는 모든 걸 바꾸어 놓았다.
지형이 변하고 인심이 변했다.
섬은 육지가 되었고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말은 더러움의
대명사가 되었다.
어지러울 난亂자가 아닌 난초蘭난이었던 거다.
난과 지초가 자라는 아름다운 섬.
이 것이 난지도(蘭芝島)였다.
대동여지도 원본이 되는 동여도엔 중초中草라고 표기돼 있다.
서울둘레길은 한강을 따라 염창역으로 이어진다.
소금 염鹽자에 창고 倉,
소금 창고가 있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역시 대동여지도 원본이 되는 동여도엔 염창鹽倉이라 표기돼 있다.
한강은 호수다.
흐르지 않는다.
흘러도 아주 약하게 흐른다.
유람선을 띄우기 위해 보를 설치하면서 호수가 되었다.
강 폭도 엄청 넓어졌다.
섬들이 사라지고 강변의 모래들도 사라졌다.
강수욕을 하는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다.
88올림픽을 치루기 위한 강 파괴 작업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100인 원정대 대원들은 모래톱 위를 걷는 대신 시멘트 제방 위를 걸었다.
버드나무도 없다.
난간 아래엔 시커멓게 고여있는 물이 파도를 쳤다.
도대체 언제까지 유람선을 띄워야 하나?
신곡보를 허물면 다시 강수욕을 즐기고 상괭이가 돌아올텐데...
볼 때마다 아쉬움이 느껴지는 우리의 한강이다.
6. 대동여지도
내게 서울둘레길을 도는 기본 텍스트는 조선 말 고산자 김정호 선생이 펴낸 대동여지도다.
170년 전 펴낸 지도니만큼 한계가 많다.
정보가 너무나 적다.
가끔 틀린 것도 나온다.
하지만 산과 강 그리고 길을 이처럼 자세히 살필 수 있는 지도 또한 없다.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며 볼 수 있는 최상의 지도다.
더구나 아름답기까지 하다.
우리가 그동안 걸었던 조선 시대엔 성저십리, 나아가 양주목, 과천현, 시흥현, 양천현이었던 길을 빨갛게 표기해봤다.
지도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어느덧 3분의 2를 걸은 것이다.
하루빨리 긋지 못한 빨간 선을 긋고 싶다.
다음 서울둘레길 100인 원정대는 한 주 건너 뛰어 5월 9일 진행된다.

2026.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