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둘레길 마지막 후기다.
둘레길을 돈 건 하루지만 하루를 더해 후기를 썼다.
총 11회에 걸쳐 돌았으니 22일을 둘레길에 쏟아부은 것이다.
경제 활동과는 지극히 먼...
하지만 추억이 남았다.
누가 말했다지 않은가!
추억이 많은 사람이 부자라고.
그런 의미에서 부자라고는 할 수 없어도 극빈은 면한 것 같다.
서울둘레길 100인 원정대 11차 후기 도봉산 코스
1.비파호 琵琶湖
일본에서 가장 높은 산은 해발 3776m의 후지산이다.
그럼 일본에서 가장 넓은 호수는 어디일까?
비파호.
일본 열도에서 가장 큰 호수로 시가현에 있다.
서울시 전체 면적보다도 넓다.
보고 있으면 마치 바다 같다.
2018년 시가현에 살고 있는 지인이 있어 처음 가본 이래 세 차례 더 찾았다.
갈 때마다 호수가에 있는 묘각원이란 여관에 머물며
호수가를 걸었고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장명사에 올라 호수를 내려다보았다.
기생 호수인 니시노코(西湖)를 몇 시간에 걸쳐 돌기도 했다.
일본어로 비와코라 불리는 비파호는 일본 역사의
중심일 뿐 아니라 우리 역사와도 인연이 있다.
조선통신사 가는 길이 비파호와 연해 있기 때문이다.
중국 여행기로 손꼽히는 것이 박지원의 <열하일기>라면
일본 여행기로 손꼽히는 것은 신유한의 <해유록>이다.
통신사 제술관으로 봉행한 신유한은 비파호를 지나며 중국 동정호와 비견될 만큼
아름다운 곳이라고 썼다.
사람들은 후지산은 알아도 비파호는 잘 몰랐다.
그럴 때마다 나는 사람들에게 이해를 돕기 위해 비파호를 서울시 면적과 비교하며
말하곤 했다.
물론 그 속엔 비파호를 일주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포함돼 있다.
비파호 둘레는 총면적 약 670k㎡, 둘레 약 235km다.
면적은 서울시보다 조금 큰 데 비해 서울둘레길 보다 조금 짧다.
너무나 잘 아는 것처럼 서울둘레길은 256.5km다.
나와 같은 조로 서울둘레길을 완주한 안종익 선생님 이야기를 해보자.
선생님께선 공직자로서 제주도에서 3년 동안 근무하며
제주올레길을 모두 걸으셨다고 한다.
제주도는 서울시 면적의 세 배.
올레길의 길이는 약 437km로 서울둘레길의 세배 가까이 된다.
안선생님 말씀으로는 제주올레는 눈으로만 보는 길이
아닌 손으로 닿아 더 좋은 길이었다고 한다.
제주올레는 2019년 출간한 <<목호의 난 1374 제주>> 와도 관계가 있다.
7코스에서 바라다보이는 범섬이 작품의 주무대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게이트우드 할머니의 발자국>이란 책을 읽고 있는데 미국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여성 최초로 완주한 게이트 우드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의 길이는 약 3,500km로 서울둘레길의 스무배 쯤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은 산티아고 순례길은 코스가 여럿이다.
그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프랑스 길은 약 800km~
900km라고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일본 구마노고도(熊野古道)도
유명하다.
길이는 구간마다 달라 무우 자르듯 몇km 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서울둘레길, 제주올레, 비와호, 애팔래치아 트레일, 산티아고 순례길, 구마노고도...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길이는 달라도 특별한 각오와 체력이 뒷받침 되어야
걸을 수 있다는 거다.
2. 지각할 뻔
사람 마음이란 게 묘하다.
집이 가깝다고 약속 시간에 맞춰 나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집이 먼 사람이 약속 장소에 먼저 나타나곤 한다.
마지막 날인 11차가 그렇다.
집에서 집결 장소가 가까운 까닭에 자꾸만 꾸물거리게 된다.
약간의 시간이 남아 평소 귀찮아서 하지 않았던 집안 정리까지 하는 거다.
이 쯤에서 그만두어야지 하다가도 멈출 수가 없다.
그러는 사이 시간이 훌쩍 지나 지각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둘러 집을 나섰다.
마을버스를 타고 회룡역에 도착.
숨까지 몰아쉬며 승강장으로 내달았지만 간발의 차이로 전차를 놓치고 말았다.
1초만 빨랐어도...
안내판을 보니 전차는 네 정거장 전이다.
마음을 졸이며 도착한 도봉산역.
대원들을 친절하게 맞이해주시던 강사님들이 보이지 않는다.
이미 집결지로 떠나신 듯 하다.
할 수 없이 서울둘레길 이정표를 따라 털래털래 걷는다.
그 때 뒤에서 나를 부르는 이 있으니 9조의 박소영 선생님이다.
다른 조지만 얼마 전 인사를 하여 얼굴을 알고 있었다.
며칠 전 밴드에 올리신 글도 재밌게 본 터였다.
“안녕하세요.”
박소영 선생님도 늦을까봐 많이 불안하셨던 모양이다.
나를 만나 비로소 안심이 되시는 듯 했다.
그렇게 서로를 위로하며 집결 장소인 도봉산 탐방지원 센터 동명여고수련원 앞으로 향했다.
5분 쯤 더 걸었을까?
다행히 원정대는 떠나기 전이다.
언제나 그렇듯 원정대장님의 당부 말씀이 있었고 강사님의 동작에 맞춰 간단히 몸을 풀었다.
3. 도봉 옛길
길게 이어진 행렬.
원정대가 걷고 있는 길은 서울둘레길이면서 북한산 둘레길이기도 하다.
구간이 겹친다.
도봉산 옛길이라 이름한 이 길은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북한산둘레길을 걸으며
걸었던 길이기도 하다.
‘혜화문을 나선 유복은 노량으로 길을 걸어 반나절만에
양주에 닿았다.’
정확한 문장은 기억 못하지만 벽초 홍명희가 쓴 대하소설 <<임꺽정>>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여기서 노량이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걷는 걸음이다.
한양과 양주는 소설의 주무대다.
사대문 안엔 꺽정의 스승인 고리 백정 갖바치가 살고 양주엔 꺽정의 부모와 형제들이 산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공간과 겹친다.
의정부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전에는 양주였던 거다.
자연스레 <<임꺽정>>을 읽으며 나는 내가 살고 있는 공간과 소설 속 공간을
비교하게 되었다.
그리고 장수원을 비롯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장소들을 찾아나서기도 했다.
상업과 교통이 발전하지 않은 조선시대엔 지금과 같은 대로가 없었다.
그렇다고 길이 아주 방치된 건 아니다.
국가가 길을 관리했다.
수도 한양에서 전국을 잇는 6개의 큰 길이 그렇다.
도봉 옛길이라 이름한 이 길은 경흥으로 이어지는 2대로다.
길을 가려면 먹고 잘 곳이 필요하다.
밤이슬을 피해야한다.
그래서 생긴 게 말을 갈아타는 역과 잠을 자는 원이다.
도봉구 노원구 의정부 일대에 전해져 오는 다락원,
누원, 호원, 장수원같은 지명은 이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조선시대 길을 되살린 도봉 옛길.
옛길엔 굴참나무가 많았다.
굴참나무의 특징은 껍질이 두껍고 무르다.
손으로 누르면 쑥하고 들어 간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굴참나무를 너와집 지붕으로 썼고 서양에서는 코르크 마개를
만드는데 썼다.
상수리나무와 더불어 볼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참나무.
아무 탈없이 잘 자라 더더욱 키가 컸으면 하는 바램이다.
3.무수골
도봉산 옛길이 끝나면 무수골이란 계곡이다.
물이 많고 근심이 없어 무수골이라던가?
의정부에 살고 있는 선배 K는 무수골에서 살던 이야기를 종종 하였다.
물이 너무나도 맑았고 바위는 투명하기 이를데 없어 아이와 함께 놀다 보면 어떻게
하루가 갔는지 몰랐단다.
유토피아가 따로 없었다.
어떻게 해서 선배가 무수골을 떠나 의정부로 이사를 왔는지는 모르겠다.
북한산과 도봉산을 수십 차례 올라 모르는 곳이 없다고 생각했던 나다.
그런데 자꾸만 내가 가보지 않은 무수골 이야기를 해 자존심이 상했다.
무수골에 가 어떤 곳인지 확인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해서 찾은 무수골은 유토피아가 아니었다.
적잖이 실망스러웠다.
계곡 곳곳에 바른 시멘트 때문이었다.
자연스러운 맛이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봄이면 선배와 함께 현호색을 보러 무수골을 찾았다.
보랏빛 현호색은 보면 볼수록 사랑스럽다.
현호색을 보지 않고 지나간 봄은 봄이 아니다.
올해는 서울둘레길을 걸으며 현호색을 봤다.
9코스인 대모산에서였다.
5.쌍둥이 전망대
무수골을 지나면 다시 도봉산 옛길이다
데크가 없고 마사토라 부르는 흙길이라 좋다.
길옆으로는 리기다소나무들이 하늘 높이 가지를 뻗으며 자라고 있었다.
원산지가 북아메리카가인 나무.
지금은 그리 사랑받지 못하는 나무지만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 많이들 심었다.
여기 리기다 소나무가 자라고 있는 것은 그 옛날 민둥산이었다는 증거다.
땔감이 귀했던 시대.
인가와 가까운 낮은 산들은 나무가 남아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비만 오면 산사태가 났다.
산사태로 집이 무너지고 밭은 흙으로 뒤덮여 농사를 망치기 일쑤였다.
다행히도 지금은 산사태가 나지 않는다.
아주 예외적으로 한 번씩 뉴스에 나올 뿐이다.
더위를 식혀줄 뿐 아니라 산사태를 막아주는 고마운 나무들.
그 가운데 특히 리기다소나무에 고마워할 일이다.
붉은 빛을 띄는 우리 소나무를 더 좋아하긴 하지만 말이다.
쌍둥이 전망대.
왼쪽으로 북한산 정상인 인수봉 만경대가 보인다.
세 개의 봉우리가 하늘을 떠 받들고 있어 삼각산이라고도 한다.
그 옆으로는 탐방이 제한돼 있는 상장 능선이 날개를 펼치고 있다.
오른쪽으로는 도봉산이다.
선인봉을 비롯한 정상부와 우이암이 한눈에 들어온다.
내 발길이 머물렀던 능선과 봉우리들.
장하다.
그래 이 모습을 다시 보는구나.
전당대와 멀지 않은 곳에서 오늘 처음으로 쉰다.
“이 것 좀 드세요.”
빈손으로 온 나와 달리 정성스레 간식을 챙겨와 나누는
분들이 있다.
고마운 일이다.
덕분에 쉬는 시간이 더욱 즐겁다.
6. 왕실묘역길
5천년 한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을 꼽으라면 누굴 들 것인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세종대왕이라고 답할 거다.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랄 수 있는 한글을 창제했을 뿐이나라
문물을 정비하고 과학을 증진시켰다.
최윤덕과 김종서로 하여금 4군과 6진을 개척해 영토를 확장했다.
세종의 업적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왕실 묘역길 들머리에 있는 묘역.
그 주인공은 양효공 안맹담과 세종의 둘째 딸인 정의공주다.
안내문을 읽으니 세종은 공주를 특별히 사랑하여 한강의 저자도와 낙천정이란 정자를
내려주기도 했단다.
하지만 아쉽게도 조선시대 여성들 대부분이 그러했던 공주의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
정의는 나라에서 내려준 작위다.
평강왕의 딸이라 평강공주라 불리는 것만큼 아쉬운 부분이다.
세종대왕을 존경하는 만큼 세종대왕의 초상이 그려진 만원 권 지폐를 셀 수 없을
만큼 만져보고 싶다는 세속적 욕망이 오늘도 꿈틀거린다.
나와는 참 인연이 없는 지폐다.
신사임당이 그려진 지폐 역시 인연이 없기는 마찬가지여서 손으로 만져보기가 힘들다.
부디 이들과 친해지길 바라며 후기를 계속 써나간다.
횡단보도를 팻말로 보이는 간송 전형필 가옥.
검색을 해보니 가볼만한 곳이다.
언제 시간을 내 가볼테다.
얼마쯤 걸었을까?
역시 가본 적 있는 연산군묘가 나온다.
폭군의 대명사.
그 때는 연산군 묘에 올라 곳곳을 살펴 봤었다.
하지만 지금은 지나칠 수밖에 없다.
연산군 재실 역시 마찬가지다.
쫓겨난 왕인데 그래도 제사 공간인 재실이 보존돼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연산군묘와 지척인 곳에는 엄청나게 큰 은행나무가 자라 원정대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검색을 해보니 수령 830년이다.
연산군 시절에도 삼백년 가까이 된 나무다.
연산군이 묻히는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았을 터다.
가을에 오면 특히 더 아름다울 것 같다.
왕실묘역길을 나서면 북한산 정상이 보인다.
한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전깃줄에 가려 보인다.
고층 아파트에 가려 부분만 보인다.
경관 자원이 중요해지는 시대!
많이 아쉽다.
우이동 4거리에 길을 건너면 우이동 계곡.
물이 참 맑다.
나무를 살리기 위해 담장에 구멍을 뚫어 나무를 밖으로 낸 집이 있어 눈길이 간다.
생명을 중요하게 여기는 주인의 마음이 전해져 좋다.
7.해단식
마침내 156.5km 완주.
해단식이 블랙야크 사옥 강당에서 있었다.
11주간 함께한 16기 100인 원정대의 활동도 여기서 끝을 맺는다.
상품이 많았다.
완주증이 주어졌고 보충 산행 없이 개근한 이들에게도 상이 주어졌다.
10명의 조장에게도 상이 있었다.
후기를 열심히 쓴 이들에게도 상이 있었다.
이들 상을 받고 보니 한 짐이 되었다.
그 외에도 이런 저런 상들이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건 최고령(80세)으로 완주한 최령 선생님과 최연소 (13세)로 완주한
이동륜 군이었다.
당연 이들에게도 상이 주어졌다.
평생에 남을 일일 테다.
완주율은 81%라고 한다.
비록 완주를 못했어도 특별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나에게도 서울이란 도시를 더 깊이 알게 된 뜻깊은 행사였다.
서울둘레길을 기획하고 진행한 모든 이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덕분에 아무 사고없이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특별한 인연으로 함께 걸었던 우리 5조 대원들에게도 감사하다.
후속 모임을 통해 정이 더욱 깊어질테다.
그리고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후기를 써내려 간 내게도 박수를 보낸다.
2026.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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