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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어머니의 종교

by 만선생~ 2024. 8. 20.
어머니가 처음 종교를 갖게된 것은 아버지가 사업을 말아먹고
빚더미에 오른 뒤였다.
밤마다 잠을 이룰 수 없었던 것은 물론 심장을 쥐어뜯기는
고통에 시달리던 어머니는 일수쟁이인 창미엄마의 권유에
따라 불교를 믿었다.
남무묘법연화경으로 흔히 남묘호렝게교라 불리는 일본식 불교였다.
어머니는 남묘호렝게교란 주문을 외우며 점차 마음의 안정을
찾았지만 형은 어머니의 종교에 대해 극렬히 반대했다.
왜색종교란 이유에서였다.
특히 왜색종교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기사가 심심찮게
신문 지면을 채우던 때라 더 그랬는지 모른다.
생각해보면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 말이다.
아무튼 형의 반대로 마음둘데없던 어머니는 이제 전남
장성의 백양사 말사인 천진암에 나갔다.
한국불교에서 가장 세력이 큰 조계종에 몸과 마음을 의탁한 것이다.
하지만 이도 몇해를 가진 않았다.
서울에서 장성까지. 아픈 몸을 이끌고 그 먼길을 달려가도 비구니 스님께서
반갑다고 손한 번 잡아주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따듯한 말한마디 들을 수 없었다.
언제나 당신께서 오거나 말거나였다.
어머니는 너무나 서운했고 더이상 절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
마음둘데 없는 쓸쓸함...
그 빈 공간을 차지한 건 교회였다.
무뚝뚝한 절과 달리 교회는 살갑기 그지없었다.
지나다 잠시 얼굴만 내밀어도 모두들 버선발로 나와 어머니를 맞았다.
목사님께서 어머니를 챙기고 장로님, 권사님 또 아무개
성도님께서 어머니를 살뜰히챙겼다.
그리하여 어머니는 늦도록 장가를 못가고 있는 내게 교회에 다녀볼 생각은
없느냐는 말씀까지 하셨다.
교회에 나가 장가간 사람 많다며.
아~~~ 따뜻한 정이 넘쳐 흐르는 교회...
이로서 어머니는 주일마다 교회에 나가는 하나님의 복된 종으로 거듭나시고
또 거듭나시었던 것이다.
어느날이었다.
서울대를 나와 사람들로부터 신망이 더욱 두터운
목사님께선 성도들을 모아놓고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성전이 작아 거룩하신 하나님과 독생자 예수님에게 영광을 돌릴 수 가 없다고.
그리하여 성도 한 사람씩 교회이전 성금으로 250만원씩 내라고.
불행하게도 돈많이 버는 아들이 하나도 없던 어머니로선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주일헌금, 수요헌금, 감사헌금등등 별의별 명목으로 돈을 걷더니
이제 교회를 새로 크게 짓겠다니...
어머니로선 이해할 수 없었다.
너무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지금의 교회가 참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날 이후 어머니는 교회에 단 한번도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살날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뜻으로 '죽으면 다 끝나는
거지'란 말씀을 종종하신다.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도 교회에서 말하는 천국도 그 말한마디로 부정하시는 어머니...
어머니는 결국 무신론자로 거듭나셨던 것이다.
생전의 아버지가 신의 존재를 끝까지 믿지 않으셨듯...
 
2014.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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