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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생활

내가 처음 접한 팝송

by 만선생~ 2024. 9. 11.

http://www.youtube.com/watch?v=xwc0iriZahI

내가 처음 접한 팝송

 

1979년 12월 서울로 올라온 우리 가족은 해가 바뀐 뒤 제기동에 터를 잡았다.
아버지 어머니는 오스카극장 앞 노점에서 오코시와 땅콩과자를 팔아
일용할 양식을 얻을 수 있었다.
하루벌어 하루 먹고 사는 최하층민의 삶이었다.
우리보다 한해 먼저 서울로 올라온 당숙네는 마찬가지로 오스카극장
앞에서 터를 잡았다.
우리는 땅콩과자와 오코시를 당숙네는 쥐포와 오징어를 팔고.
어려웠지만 동기간이 있어 카바이트 불빛 아래 서로 의지할 수 있었다.
당숙네는 우리가 세들어 살던 곳에서 오분 거리에 살았다.
낡은 집에 비좁은 방 한 칸.
당숙네는 아이가 셋이었는데 온갖 살림살이가 뒤엉켜 어지럽기 짝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곳에서 살 수 있었을까 싶은데 나와 
동생은 그 집을 풀빵구리 드나들듯 했다.
오로지 티브이를 보기 위해서였다.
나와 동생은 날마다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 난리법석을 피우는
육촌동생들 틈바구니에서 티브이 앞에 고개를 쳐박았다.
티브이는 요술램프까지는 아니어도 마법상자임에 틀림 없었다.
연속극이 끝나면 만화영화가 만화영화가 끝나면 인형극,
코메디프로, 주말의 명화가 뒤를 이었다.
봐도 봐도 물리지 않는 이 엄청난 재미...
티브이 없는 세상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실로 우리는 문명의 이기 앞에서 완전 무장해제 당한 셈이다.
그렇게 나와 동생은 그해 내내 당숙네 집을 풀방구리 드나들 듯 했다.
열세 살. 나는 정말 몰랐다.
일부 정치군인들이 12월 12일 밤 군사반란을 일으킨 줄도 5월,
광주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무장한 군인들에 의해 죽어나갔다는 사실도.
그저 티브이 앞에서 마냥 행복할 뿐이었다.
그래서일까?
티브이 영상의 잔상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해가 바로 그해가 아닐까 싶다.
영상만이 아니라 멜로디도 아주 깊게 각인되었다.
티브이 프로그램 사이사이 들려오는 영국 팝그룹 둘리스 내한공연 광고.
아리까리까리~ 까리까리~~~샤러어겔러~~~원헤이~~
가사를 알아듣진 못해도 그 흥겨운 리듬만큼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비록 내한공연 실황중계를 보진 못했지만 광고에 비친 잠깐동안의
영상과 리듬만으로도 둘리스의 존재를 각인하기엔 충분했다.
둘리스 내한공연이 있은지 삼십여년이 지난 2014년 8월 29일.
어머니가 틀어놓은 라디오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둘리스의 원티드를 들었다.
삼십여년 전처럼 여전히 흥겨웠다.
궁금증에 관련기사를 검색했고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는 한편 다운받은 영어가사를 봤다.
외계어처럼 들리기기만 하던 가사가 비로소 조금씩 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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