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찮게 2003년 북한공연을 보게 되었다.
댄스 그룹인 베이비복스가 춤을 추며 노래를 하는데 북한 주민들 표정은 돌처럼 굳어있다.
절대 웃지 않으리라 단단히 결심을 한듯 하다.
그도 그럴 것이 남조선 음악은 북한 주민에게 너무나 낯설지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당의 심기를 건드려선 안된다.
행여 웃는 모습이 화면에 잡히기라도 하면 어떤 곤욕을 치룰 지 알 수 없다.
북한 주민입장에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천박하기 이를데 없는 자본주의의 사생아.
미제의 식민지.
1990년 춘천 캠페이지에서 군복무를 했다.
방공포대에서 파견 근무를 나와 있는 중이었다.
시설이 한국군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전용 농구 체육관까지 있어 우리부대원들은 날마다 체육관에서 농구를 하였다.
그날은 내게 정말 특별한 날이었다.
달라스 카우보이 미식축구팀 치어리더들이 순회 공연을 온 것이다.
나는 운이 좋게도 근무 시간이 완전 비껴나 있었다.
덕분에 미군들 틈 속에 섞여 공연을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었다.
그녀들 모습에 나는 완전 혼이 나갔다.
세상에 여자들이 이렇게 섹시하고 이쁠 줄이야.
그 중 한 여자는 너무너무 예뻐 시선을 처음부터 끝까지 고정 시켰다.
공연이 끝나고 근무지에 갈 때는 그녀의 모습이 계속 어른거렸다.
그녀와 사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국경을 넘는 세기의 사랑.
이런 제목의 신문 기사가 실렸으면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유류고에 쳐박혀 있는 드럼통보다 못한 군바리신세였다.
민간인 여자 한 명 만날 수 없는 생활이 끝도 없이 이어질 뿐이었다.
내가 북한 남자라 가정해보자.
어느날 저 공연을 보게 되었을 때 반응은 어떨까?
좀 당황스러웠을 것 같다.
타락할대로 타락한 미제의 식민지 남조선.
하지만 자꾸만 눈이 쏠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특히 한 여인에 시선이 고정돼 있다.
공연이 끝나고 며칠동안 그녀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어른거리는 거다.
남조선과의 관계가 진전돼 저 여인과 사귈 수 있다면...
아... 휴전선을 뛰어넘는 사랑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
그럴 수만 있다면...
돌아보니 무려 20년도 더 된 영상이다.
믿기지 않게도 그 땐 남북이 오가며 저렇게 공연을 했었다.
뭐든 그렇다.
처음엔 낯설다.
하지만 자주 보다보면 익숙해지고 그러면서 정이 든다.
동질감을 갖게 된다.
그러나 모처럼 조성된 화해무드는 오래가지 않았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남북관계는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윤석열 정부는 말할 것도 없다.
내 인생에서 걸그룹은 관심밖이었다.
원더걸스, 베이비복스, 투애니원, 소녀시대, 르세라핌...
어쩌다 한 두번 보았을 뿐이다.
그런데 오늘 처음 제대로 본 베이비 복스 멤버들
정말 예쁘다.
심지어 노래까지 좋다.
이렇게 흥겨울 수가...
지금은 40대가 되어있을 그녀들...
그녀들 얼굴에도 주름살이 생겼을까?
우리의 걸그룹이 북한에서 공연을 하고 북한의 예능인들이 남한에 와 공연을 하는 그날이
하루 빨리 찾아왔으면 좋겠다.
'에세이 > 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길거리 차력사와 약장사 (2) | 2024.09.13 |
---|---|
오래 살고 싶다면 (3) | 2024.09.12 |
내가 처음 접한 팝송 (4) | 2024.09.11 |
해동남유금성산 (1) | 2024.09.11 |
우물에 빠질까 걱정 (0) | 2024.09.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