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거리에선 종종 약장사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차력사들을 동원해 눈길을 끌었다.
해머로 배 위에 올려놓은 벽돌을 깨는 것은 물론 입에서 불길을 내뿜는
차력사들의 모습은 아찔했다.
저러다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보는 내내 떠나지 않았다.
다행히 다치는 모습을 본적은 없다.
하지만 저렇게라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가 안타까웠다.
내 마음을 더 심란하게 했던 것은 함께 약을 파는 여인들이었다.
이들의 임무는 손님에게 약을 건네고 돈을 걷는 것이었다.
손님 대부분이 남자이다보니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서라도 여성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한결같이 나이가 많았다.
눈가 주름을 가리기 위해 분을 진하게 바른 얼굴을 바라보노라면 절로
측은지심이 들었다.
더구나 입술에 칠한 빨간 립스틱은 하얗게 분칠한 얼굴과 대비돼 속이
메쓰겁기까지 했다.
최소한의 분만 남겨두고 벗겨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아내이고 누군가의 어머니일텐데 찬바람 부는 거리에서 검증되지도
않은 약을 팔아야 하는 그네들 신세가 안됐다 싶었다.
차력사를 앞세운 약장사를 본건 군대를 가기전인 88년이 마지막이었다.
군을 제대하고 나선 차력사를 앞세워 약파는 모습을 본적이 없다.
90년대 초 수원역 인근 어느 공터에서 약장사를 보긴 하였다.
이 때는 차력사없이 밴드를 동원하였다.
물론 분을 하얗게 칠한 여인도 빠질 수 없었다.
눈가에 칠한 아이새도우가 유난히 돋보였다.
위험을 안고 공연을 펼쳐보이던 차력사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얼굴에 하얗게 분을 칠한 여인들은 또 어디로 갔을까?
생각해보니 3저 호황이었던 80년 대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풍경이
아니었나 싶다.
약은 마진이 많이 남았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약장사는 차력사들과 여인을 고용, 전국을 떠돌며 장사를
하였을 것이다.
80년대 같은 호시절은 다시 오지 않는다.
지금은 성장이 아주 더디다.
더구나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지금은 마이너스 성장이다.
정치, 군사, 문화, 외교 모든게 뒤로 후퇴하고 있다.
단군 이래 처음으로 아들세대가 아버지 세대보다 못사는 시대로 돌입을 했다.
상대적 박탈감이 공기 속에 떠나니면 사회 불안 요소로 작용한다.
디지털 시대로 변환했지만 그에 따르지 못하는 노년층 인구가 많다.
노년층은 아니지만 나는 디지털시대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지진아다.
아날로그 시대를 그리워한다.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애착이 많다.
그러면서도 과거회귀형 인간으로 각인되지 않을까 은근 걱정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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